이글루스 | 로그인  


오해의 여지가 있는 명령은 항상 오해되기 마련이다. (2010-Feb-15, Mon)

Any order 

that can be misunderstood 

will be misunderstood.


- Von Moltke the Elder

at the outbreak of the Franco-Prussian War



질럿의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위의 인용구는 제가 좋아하는 인용구입니다. 군대에서의 명령 뿐만 아니라 사람들간의 의사 소통은 항상 오해의 여지를 최대한 피해야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무엇이든 중복해서 적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예컨데 2010년 2월 15일이면 '당연히' 월요일이므로 요일을 따로 적는 것이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중복해서 적는 것이 오해를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닳고 나서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항상 적당한 중복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저의 블로그에 있는 글이 오해의 여지가 적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위의 인용구와 같이 함께 오해를 줄여나가며 대화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by 질럿 | 2018/12/31 23:59 | 세상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0)

모 동문 모임에 적은 진로 상담글 20170105

아래 글은 내가 속해있는 모 동문 모임에 적은 진로 상담글이다.

상담을 요청한 이는 고등학교를 갖 졸업했고 대학 진학 성취 등과 관련하여 포괄적인 진로 상담을 요청한 글이고 많은 다른 동문들이 이에 대해서 좋을 말을 공유했고 나도 아래와 같이 의견을 보태었다.

==

저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이와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잘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구분하시자고 하고 싶네요. (물론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이라고 공자님이 말씀하셨다지만 조금 다르게 접근해봅시다.) 다시 "좋아하는 일"은 "재미 있는 일"과 "멋있어 보이는 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재미와 멋, 미묘하게 다르지요? 물리학은 제가 그만 둘 때까지도 저에게 있어서 "멋있는 일"이었습니다."재미"가 줄어들었지만요. 다른 한 편으로는 "잘 할 수 있는 일"을 "경쟁자에 비교우위가 있는 일"과 "절대적으로 각종 필요(=금전, 명예, 성취감 등)를 만족 시켜 줄 수 있는 일"로 구분해서 생각해 봅시다. 제 생각에는 "절대적 필요"보다는 "비교우위"때문에 물리학을 그만둔 것 같네요. 다른 사회인 동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

by 질럿 | 2018/01/05 03:00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재난안전 이야기: 수능 연기와 재난 경보 대피 훈련

"안전"에 관련한 이야기 하나.

아침에 딸을 데리고 '마이 리틀 짐'이라는 운동학원(*1)에 갔다. 아무래도 애가 어리니까 보호자 한 명이 아이와 붙어서 수업한다. 40분짜리 과정을 한 20분 정도 마쳤을 때에 밖에서 화재 경보 같은게 울렸지만 체육관 내부는 아무래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하는지라 화재 경보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었다. 이 때 밖에 있던 사무직원이 들어오길래 화재 경보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운동 강사에게 알렸다. 이에 모두가 건물 밖으로 대피하게 되었다. 결국 20분 남은 운동 수업은 취소되고 연기 되었다.

안전을 고려하여 대피-취소-연기한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16일 목요일에 예정되었던 수학능력시험(수능)을 일단 1주일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로 안전을 고려한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입학사정 일정이 순연되어서 혼란이 가중된다(*2)고 주장한 이들도 있던데 그냥 무슨 결정에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혼란이 있다고 한들 수능 연기에 따른 대응 메뉴얼이 없음을 비판해야지 연기 자체를 비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3)

===
*1: "만 두 돌 되어가는 딸에게 학원이라니!"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한국으로 치면 문화 센터 정도에 해당되고, 사실 나와 아내가 모두 운동에 소질도 없고 노력도 많이 안했던지라 딸의 운동 능력에 장기 투자 해주기로 했다. 수학이나 물리학은 안 가르치고 있으니 사(?)교육 과다가 아닐까 걱정 안하셔도 된다. 여담으로 딸아이 또래 수업반은 "beasts"반이라고 부르는데 요즘하는 행동을 보니 참 어울리는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2: 한국 국내 대학교에 있는 지인들은 이 때문에 대입 전형이 순연되어서 겨울 방학 일정이 꼬였다고 한다. 이미 예전부터 정해져 있던 학회 일정도 있을 수 있고.

*3: 내가 대학원에서 실험 수업 가르칠 때에 주1회 수업이 빽빽하게 짜여있고 매주 실험 내용에 대해 채점을 해서 학점을 평가하기 때문에 한 주라도 수업을 거르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과목이 있었다. 당시 물리과 건물에 한 두 달에 한 번은 화재경보가 울리고는 했는데 화재경보가 울리면 일단 모든 사람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고서 소방관이 안전을 확인 할 때까지 아무도 건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이에 실험 특정 교시를 완전히 수업을 못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험 예비 주차를 둔다거나 이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주차의 점수를 평균 낸다거나하는 방식의 대응 메뉴얼이 있었다.

by 질럿 | 2017/11/30 12:35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팟빵 서비스의 외부 차단(RSS중단)한데에 대하여

팟빵 을 통해 호스팅되던 (한국 제작) 팟 캐스트들이 지난 주 부터 업데이트가 안 되었다.
알고보니 팟빵이 개편하면서 #RSS 피드를 막아 버린 것이었다. 내가 애청하던 한국어 팟캐스트가 대부분 막혀 버렸기에 짧게 나마 안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해당 팟캐스트 제작자 분들에게 연락을 드려봤더니 어떤 분은 "팟빵 말고 다른 팟캐스트 앱도 있나요?"라고 하실 정도로 팟빵의 한국어 팟캐스트 시장 장악력은 높더라.

네이버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네이버 안에 가두어서 한국의 웹 환경을 내가 덜 좋아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듯, 팟빵도 비슷한 길을 갈 것 같다. 내가 애청하던 발칙한경제의 권순우 기자님은 팟빵의 일방적인 약관 변경 등에 대해서 팟빵 대표에게 직접 질의 및 항의하셨고 이에 팟빵을 옹하하는 포스팅을 올리렸다.

https://www.facebook.com/soonwoo.kwon.50/posts/1589610811080291

하지만 나는 중립성이 보장되는 앱을 통해 업데이트 할 수 있는 팟캐스트가 아니면 듣지 않게 될 것 같다. 들어야 할 팟캐스트는 아주 많으니까. 더군다나 좋은 한국어 팟캐스트가 점점 더 많아지면서 미뤄 두었던 영어 팟캐스트에 집중하면 되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영어 공부 열심히하라고 하신듯하다.) 그 와중에 팟빵에 종속되지 않고 XSFM 팟캐스트를 호스팅하는 UMC 께 경배를!

덕분에 '그것은 알기 싫다'와 '요즘은 팟캐스트 시대' 모두 다 잘 듣고 있습니다.


by 질럿 | 2017/07/08 01:39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한국군 군내 사망자 수 통계에 부쳐

페이스 북에서 다른 분의 포스팅에 달려고 쓴 댓글이다. 간단하게 엑셀로 표를 만들었다.==93년부터 통계가 정확히 나와있는데요. 20년 사이에 사망자수가 1/4이 되었네요.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1701

93년만해도 대충 성인 남자 1000명~2000명 당 1명이 군대에서 죽는 비율이었네요. 문민정부 이전의 통계는 통계청에서 제대로 제공하지도 않을 정도라는게 무섭습니다. 한겨레 신문의 기사를 참조하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7270.html

위와 같은데요 신기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내 사망자 수가 많이 줄어드네요. 즉, 군내 사망자 수를 줄이는 것은 국가의 의지로 충분히 가능하나는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때 베트남 파병이후인 1973년 ~ 1979년만 보면 연간 1400명이 죽었고 최근에는 150명 이내군요. 1/10이에요. 예전에 그리고 저 군대 갈 때만해도 군대에서 "죽을 수 있다" 혹은 "죽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는 통념이 있는것이 절대 잘 못 된 것이 아니네요. 실제 상황이 바뀐 후 한 세대가 지나야 통념이 바뀌니까요. 저보다 9살 어린 사촌 동생은 그 사이에 사회 통념/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군대에 대해 그나마 덜 부정적인 인식이 있더라고요.

#쓸고퀄 댓글을 위해 제가 통계청 등에서 가져온 자료로 만든 연도별 21세 남성추정인구 1000명당 군내 사망자수 입니다. 박정희 정권때는 1000명 당 3명 꼴인데요, 이 이야기는 초중고 한학년이 몇 백 명 단위라고 할 때에 같은 학년 동창 중 1명(초중고 동창이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을 감안하면, '동창'이라 부를 수 있는 같은 학년 급우들 중 2명 이상)은 군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이 숫자는 1970년 대에 군대에 갔을 1950년대생들의 유아사망율이 높았었음을 감안하면 1000명 당 사망자수는 조금 더 높아지겠군요.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가까운 지인(친한 교우, 형제/사촌, 혹은 그들의 친한 친구) 중 1명이 군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재/군사정권에서의 군내 사망 비율을 생각해보면 90년대~2000년까지도 만연했던 병역 기피 풍조가 설명됩니다.

* 출처: 통계청, 한겨레 신문 기사, 그리고 연도별 출생아 수를 긁어 온 #나무위키
==군내 사망자 수에 대한 연돕려 통계와 징집병으로 복무할 연령인 만21세의 남성인구를 추산하기 위한 21년 전의 출생아수. 사망 비율은 만21세 남성 추정 인구 1000명당 사망자수임. 남성 추정 인구 = 21년 전 출생자수를 절반으로 나눔.
사망연도 사망자수 출생연도 출생자수 사망비율
1973 1318 1952 775630 3.40 
1974 1394 1953 830330 3.36 
1975 1555 1954 892236 3.49 
1976 1360 1955 961055 2.83 
1977 1471 1956 999005 2.94 
1978 1342 1957 1016573 2.64 
1979 1381 1958 1046011 2.64 
1980 970 1959 1074876 1.80 
1981 806 1960 1099294 1.47 
1982 692 1961 1099164 1.26 
1983 675 1962 1089951 1.24 
1984 789 1963 1075203 1.47 
1985 721 1964 1057241 1.36 
1986 653 1965 1040544 1.26 
1987 619 1966 1028479 1.20 
1988 538 1967 1020235 1.05 
1989 453 1968 1016739 0.89 
1990 430 1969 1017618 0.85 
1991 355 1970 1006645 0.71 
1992 367 1971 1024773 0.72 
1993 343 1972 952780 0.72 
1994 416 1973 965521 0.86 
1995 330 1974 922823 0.72 
1996 359 1975 874030 0.82 
1997 273 1976 796331 0.69 
1998 248 1977 825339 0.60 
1999 230 1978 750728 0.61 
2000 182 1979 862669 0.42 
2001 164 1980 862835 0.38 
2002 158 1981 867409 0.36 
2003 150 1982 848312 0.35 
2004 135 1983 769155 0.35 
2005 124 1984 674793 0.37 
2006 128 1985 655489 0.39 
2007 121 1986 636019 0.38 
2008 134 1987 623831 0.43 
2009 113 1988 633092 0.36 
2010 129 1989 639431 0.40 
2011 143 1990 649738 0.44 
2012 111 1991 709275 0.31 
2013 117 1992 730678 0.32 
2014 101 1993 715826 0.28 
2015 93 1994 721185 0.26 
2016 81 1995 715020 0.23 

by 질럿 | 2017/07/01 02:24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덕후 중에 최상은 양덕후라던데... 미군 2차대전 전투식량 리인액트


밀리터리 주제에 관심을 갖고 블로그를 둘러본 적이 있는 이들은 "리인액트"라는 일종의 덕질을 알 것이다. 예컨데 2차 세계대전 혹은 미국 남북전쟁 때의 복식과 장비를 본따 복제품을 만든 다음 이를 가지고 노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다수가 참여하여 이전의 유명한 전투를 재현하기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학자 혹은 전쟁사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다시 검증해 보기도한다. 일례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르키미데스가 청동 방패를 거울로 이용하여 오목거울을 만들고 태양 빛을 모아서 로마군의 목재 군함을 태웠다는 전설이나 고대 그리스 시대에 노로 젓는 갤리선의 순항 속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리인액트를 한다던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쯤 되면 리인액트인지 실험역사학(?)인지 구분하기 모호할 것이다.

* 아르키미데스의 광선 무기 관련 링크1, 링크2

나는 여러 나라의 전투 식량에 관심이 많은데 사실 군대 있을 때에는 제대로 전툭식량을 먹어본 것이 논산의 육군훈련소에서 자대 배치 받는 호송 열차에서 먹어본 것 뿐이었다. 그리고 미군에 배속되 근무하던 대학 동기가 가져다준 현용 미군 전투식량(MRE)을 먹어본 정도랄까. 얼마전 웹서핑 중, 미국의 2차대전 전후의 전투식량인 "C-ration"을 리인액트해서 파는 독일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당시 전투식량에서 M유닛에 해당하는 것을 재현해서 파는 것 같다. 당시에는 주식이 비스킷 등이 들어있는 B유닛(밥?)과 고기가 들어간 M유닛(주요 반찬?)으로 나뉘었는데 이중 M유닛을 사람들이 먹고 싶어하나보다. 조만간 한 번 직구해서 먹어봐야겠다.

by 질럿 | 2016/07/23 15:52 |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기술의 진보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가? 0

과연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서 우리들은 이에 얽매여서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을까? 말하자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고, 전통적인 인간관계(얼굴을 대면하는 face-to-face)를 소원하게 한다는 것 말이다. 스마트폰의 노예라는 이런 블로그 글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정보기기를 잘 활용하므로서 더 효율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시간을 사용할 수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 메세지를 주고 받는 것은 다 기술의 진보 덕분 아닌가...

기술의 진보로 인한 인간 소외에 대한 논의는 항상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종류의 미디어가 등장 할 때 마다 말이다. 지금은 예술의 한 장르로 평가 받는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영화 역시 도 에 대한 반감은 항상 있어왔다.

편지 - 전보 - 전화
라디오 - 영화 - 텔레비젼 - 인터넷 방송

===
추후 작성 예정

by 질럿 | 2016/07/23 15:38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

짐 로저스의 오토바이 세계일주기 원제는 "Investment Biker"이다. 

*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 다이아몬드

과거에는 다이아몬드 보다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가 더 귀중한 보석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드비어스 광산회사(De Beers)가 다이아몬드를 독점 공급하면서 가격을 윈위적으로 높게 유지했음. 당시(1990년 혹은 1995년)에도 생산과 판매를 80% 통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형성된 높은 가격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게 되고 드비어스는 높은 가격에 이를 지속적으로 매입해야함을 강조했다. 짐 로저스는 다이아몬드를 매도하고,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를 매수하라고 조언. 보석용 다이아몬드 가격의 시계열 자료는 2006년부터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전부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보석용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상품 가격(원유 등)의 상승과 함께, 혹은 미국 달러화 가치의 하락과 함께 폭등해왔다. 공업용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1900년부터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를 보면 놀랍다.

우선 인플레이션을 보정한 1998년 미국달러화 가치로 환산한 '톤당 공업용다이아몬드 가격'은 1929년 금융시장 붕괴직전에 최고 였고 이 가격 거품이 완전히 꺼진 1941년이후 에는 비슷한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1968년을 기점으로 다시 가격이 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1989년~1990년을 기점으로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일단 공업용 다이아몬드 가격으로 본 짐 로저스의 통찰은 정확했다. 물론 보석용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아프리카의 투자 대상

짐 로저스는 카메룬, 짐바브웨, 보츠와나 세 나라를 아프리카에서 투자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짐바브웨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하고, 보츠나와 역시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카메룬이 유일하게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되어있는데 1990년과 비교해서 2~3배

===

(박사 학위 논문 발표 직전인) 2012년 3월 24일에 작성하다 만 글. 일단 여기까지라도 공개하고 싶다.

by 질럿 | 2016/07/23 15:37 | 좋아하는 책(Bookstory) | 트랙백 | 덧글(0)

한국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프랑스 바칼로레아 비교에 대한 단상 0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비교하는 글이 인터넷 상에 자주 올라오고는 한다. 이러한 비교글에서는 암기 위주의 한국 수능시험과는 달리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 바칼로레아를 찬양하고 바칼로레아에 나온 문제를 나열하며 끝나고는한다. 이는 아마도 2013년 10월 3일에 한국 교육방송(EBS)의 "지식채널e"라는 프로에서 "시험의 목적"이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바칼로레아를 소개한 이후에 이러한 바칼로레아 찬미 현상이 급증한 것 같다. EBS 방송의 화면을 캡쳐(일명 스샷,screen shot)가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소개되고는한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바칼로레아 문제는 좋지만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블로그
* 바칼로레아를 지지하는 블로그

===
2015년 11월에 쓰다만 글인데 일단 서두만이라도 올린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문제가 좋아도 풀이과정이 좋아야한다는 것(GRE 작문 시험의 Arco책 관련)과 종종 바칼로레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들이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한국의 대학졸업자도 쩔쩔맬 문제를 풀어내니 프랑스가 최고다라는 식의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를 쓰고 싶었다. 언제 쓸지는 미정.



by 질럿 | 2016/07/23 15:36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마쉬맬로우 실험 그리고 노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

http://priceonomics.com/what-marshmallows-tell-us-about-silicon-valley/

유명한 마쉬맬로우 실험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를 담은 글.

마쉬맬로우 실험은 만5세 가량의 유아에게 마시맬로우를 하나 준 다음 15분 동안 안 먹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약속하고 기다렸던 아이들(인내심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분류한 후 20년 이상 추적 조사한 것이다. 인내심이 있는 아이들은 후에 수학능력시험(SAT) 점수 등으로 측정할 수 있는 학업 성취도가 높았다고 한다. 즉 현재의 가치(바로 마쉬맬로우를 1개를 먹는 것)를 미래의 가치(기다렸다가 마쉬맬로우 2개를 먹는 것)보다 높게 평가하는 아이들은 성장해가면서 학업 성취도 등이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말하자면 공부를 하기 위해서 다른 욕구를 참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류의 훈계글에 나오는 마시맬로우 실험 이야기이고 링크에 단 글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로 실험 대상이었던 아이들이 실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trust)이 아이들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지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추가적인 실험에서는 예의 마쉐맬로우 실험을 하기 직전에 크레용과 스티커 등을 갖고 예비 실험을 해서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거나 반대로 믿음을 깨버렸다. 즉 아이가 처음 실험자를 만났을 때에 스티커와 크레용을 주면서 만지지 않고 잠깐 기다리면 더 좋은 크레용과 스티커를 찾아와서 주겠다고 약속한 다음 그룹A는 약속대로 가져다 주었고 (여기서 피험자인 아이들이 크레용, 스티커에 손을 안 대고 기다리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다만 실험자들, 즉 어른들이 약속을 지키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룹B는 안타깝게도 스티커랑 크레용이 남아있지 않아고 하며 아이들이 '속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제 다시 마쉬맬로우 실험을 하자 당연히 믿음 심어준 그룹A의 아이들이 15분을 기다려 마시맬로우를 하나 더 얻어낼 확률이 높았다. 다시 말해 노력을 안 하는 아이들/어른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 이유는 노력에 따른 보상이 확실하지 않거나 적어도 확실하지 않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링크의 글에서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 원래의 마쉬맬로우 실험에서 15분을 기다릴 수 있던 아이들은 '이미 평소에' 주변 어른들(부모)이 노력에 따라 약속한 보상을 제대로 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다시 말해 15분을 기다리지 못한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환경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를 링크의 글에서도 설명하고 있다. 일명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를 평가할 때에 '천성이 게을러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게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게으름'은 사회 구조상 제대로된 보상을 받지 못 할 경우에 생길 뿐이라고 한다. 일례로 선진국으로부터 '게으르다'는 평을 받았던 나라가 있는데 바로 1916년의 일본이라나... 즉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려면 정당한 노력에 대한 제대로된 보상이 이루어지고 이에 대해 구성원들의 믿음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

여기까지가 공부할 겸 요약 번역한 것이고. 요즘 육아를 하다보니 아이가 커나감에 따라서 어떻게 하면 '정당한 노력에 대해 보상 받는다'는 믿을을 심어줄 수 있을지 고민중.

by 질럿 | 2016/06/04 16:59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