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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여지가 있는 명령은 항상 오해되기 마련이다. (2010-Feb-15, Mon)

Any order 

that can be misunderstood 

will be misunderstood.


- Von Moltke the Elder

at the outbreak of the Franco-Prussian War



질럿의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위의 인용구는 제가 좋아하는 인용구입니다. 군대에서의 명령 뿐만 아니라 사람들간의 의사 소통은 항상 오해의 여지를 최대한 피해야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무엇이든 중복해서 적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예컨데 2010년 2월 15일이면 '당연히' 월요일이므로 요일을 따로 적는 것이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중복해서 적는 것이 오해를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닳고 나서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항상 적당한 중복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저의 블로그에 있는 글이 오해의 여지가 적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위의 인용구와 같이 함께 오해를 줄여나가며 대화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by 질럿 | 2021/05/17 17:06 | 세상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2)

신의주, 서울, 시카고, 싱가포르

지난 주에 업로드 된 <그것은 알기 싫다>의 에피소드 <한민족♥이상평론>[1][2]를 어제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 중국의 파오차이-김치 문제에 대해 오역 문제를 지적한 <이상평론 lost in translation>[1][2] 시리즈 이후로 손이상 선생의 민족관(?)에 대해서 여러가지 여론이 있었는지, 아예 민족관 특별 에피소드가 나와버렸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이 거창하기는 하지만 나도 나름 디아스포라의 산물(아니 산인)이다. 나의 외가는 해방이후-한국전쟁 사이에 신의주에 사시던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바로 윗형이신 외종조부께서 몇 십명 단위로 월남하셨고, 이 단체 월남 이외에도 월남하신 외가 어르신들은 아주 많다. 뭐 그런고로 나는 (출생지주의를 따르는) 미국 기준에서 남한 사람인 아버지와 (미국기준에서) 북한 사람(이었던) 어머니의 혼혈아(?!)로서 남한국적이되 특수한 취급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를 출생지 기준으로 분류하여 쿼터를 주는데 남한 출생과 북한 출생을 구분한다. 이에 탈북하여 한국에 정착한 북한 출샌 남한 사람들은 미국 이민이 용이하다. 그런데 나는 남북한 혼혈로 그냥 제3의 출생으로 집계해서 또 다른 쿼터의 적용을 받는다고 했었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1948년에 출생하셨기 때문에 작금의 북한과 아무 관계가 없다.)

외가 어른들은 서울에 정착해서도 김일성이 언제 또 쳐들어오면 월남한 사람들이라고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고 더 멀리멀리 가셨다. 미국으로. 결국 외할아버지와 바로 윗형님이신 외종조부께서는 시카고에 정착하셨다. 1991년에 외할아버지-외할머니께서 시카고에서 금혼식(결혼50주년)을 하셨을 때에는 미국 중부에 그 많은 이북출신 어르신들(주로 평안도)이 모이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그게 장관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재미교포는 다 이북 출신 아닌가 할 정도로 외가 어른들이 이민을 많이 가있었으니까)

여튼 우리 외가쪽 친척은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직계는 시카고에 있(었)다. 나는 엘레이에서 활동(?)을 했기에 응원하는 야구팀은 엘레이 다저스라고 했을 때에 내 사촌 (Joe Han)은 "제발 우리 일족이면 시카고 컵스 합시다"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나마 엘레이였기 때문에 나는 "제발 한국인이면 다저스 합시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엘레이에도 외가쪽 친척이 아주 많은데 이쪽은 어머니의 사촌이신 분들이다.)

여튼 이렇게 나의 외가쪽 직계 어른들은 신의주에서 월남한 서울을 거쳐 시카고에 정착하셨고, 어머니는 1991년의 금혼식 참석하신 이후에 간단한 수필 <신의주, 서울, 시카고>를 집필하셨다. 압록강변에 있는 논밭 이야기로 시작해서 시카고의 금혼식 잔치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의 수필 제목은 지금 보니 운율이 살아있다. <성탄제>의 구절 '서러운 서른 살'에 버금가는 두운 아닐까한다.

외가쪽 친척이 모두다 미국에 계시지만, 많은 페친이 아시다시피 나는 한국(남한)에서 나고 자랐다. 이는 우리 어머니만 이민을 안 가셨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자라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했고, 외가쪽 어른들은 내가 엄마 대신(?) 시카고(는 아니더라도 미국)에 살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내 업무상 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미국에서 다시 아시아로"" 디아스포라하게 되었고, 어머니의 수필 제목은 다음과 같이 바꿔서 속편을 써야할 것 같다. <신의주, 서울, 시카고, 싱가포르> - 물론  여전히 두운이 맞는다.

디아스포라 몇 세대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을 나의 아이는 본인이 싱가포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유치원을 다녔다. 2018년 내셔널데이(독립기념일)에는 싱가포르 국기를 흔들면서 유치원에서 배운 싱가포르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러다가 옮긴 유치원은 같은반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화교계(화예) 싱가포리안들이기도 하다 보니, 거기서는 '코리안'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코리안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BTS와 블랙핑크도 있고해서 코리안으로 지내는 것이 'Latte'에 비해서 전혀 나쁘지도 않고하지 별무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화예가 많은 유치원에서 이질감이 없도록 출석부에 한자도 병기해달라고 해서 Eun Jooyoung(殷珠永)으로 다른 화예들과 다를바 없이 해줬다. 독음이 문제가 될 것 같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표준중국어(만다린)를 쓰지만 이름은 영문으로 쓸때 화예들의 경우 만다린 독음보다는 복건어나 객가어 혹은 광동어 독음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도 별 위화감이 없다.

쓰는 말로 할 것 같으면 아이가 돌 전후까지야 어디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니다보니 한국어에만 노출되었고, 외출해서 내가 영어하는 것을 들으면 이상한 말을 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했다. 그러다가 한국의 '문센' 같은 부모참여수업을 필두로 놀이방 같은 곳에 다니다보니 기본 언어가 영어로 장착되었다. 그러다가 30개월쯤인 2018년 여름에 한국 간 김에 한국의 영어유치원에 보냈더니 한국말을 아주 많이 배워서 집에서는 한국말로 소통하게 되었다. (영어유치원에서 한국말을 배운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한국의 영어유치원은 경우따라 다르지만 한국어 수업이 절반 혹은 그 이상이고, 영어 수업에서도 영어 원어민 비중이 100%가 아니다.)

이렇게 계속 말은 한국어로 대화했지만 한글은 아직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세 돌 즈음에 공부를 많이 시키는 지금의 유치원으로 옮긴 다음 부터는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우고 영어 알파벳 쓰기와 중국어 한자(간체자)쓰기를 배우다 보니 한글까지 가르치는 것은 공부 부하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한국어로 하는데 아이에게 편지를 쓰거나 문자메세지를 보낼때는 영어로 보내야한다. 뭔가 조선시대에 말은 한국말을 하고 글은 한문을 쓰던 느낌이든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자기는 싱가포르에 사니까 싱가포리안이라고 하던 2년 쯤 전에, 마트에 갔을때 안내방송이 영어와 중국어로 나오니까 "어~ 왜 English랑 Chinese만 나오지. Korean만 아는 사람은 어떻게하라고"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싱가포르 사람들은 적어도 영어 아니면 중국어 중에 하나는 알아듣는다고 이야기해줬다. 아이가 생각하는 싱가포르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싱가포르 사람보다 외연이 넓었던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싱가포르와 코리아의 구분이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지만.

언어는 또 다른 국면으로 진화하고 있다. 작년인가에는 영국에서 나온 박물지 같은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헬리콥터(Chopper)에 대한 책이었는데, 내가 피곤하기도 하여 영어책을 들고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어줬더니 영어책인데 왜 한국어로 말하냐고 영어로 읽으라고 해서 (고생하며) 읽어줬다. 이게 또 영국에서 나온 책이면 표현도 좀 영국식이고 해서 '되도 않는' 영국억양을 조금 넣어서 읽어줘야할 것 같기도해서 피곤한 일이다. 지난 주말에는 한국어 자연사책을 읽어주는데 아무래도 한국어로 된 용어는 못 알아들을 것 같으니까 영어로 바꿔서 읽어줫더니 이번에는 한글로 써있으니까 한국어로 읽으란다. 물론 못 알아듣는 말이 많다. Jupyter는 알아도 목성을 모르니까.

영어 밖에 못 하던 두돌~두돌반 무렵에 귀여운 발음으로 "come here come here"하면서 아빠 이리오라고 하더나 "sit here sit here"라고 하면서 옆에서 같이 놀자고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러다가는 한국의 영어유치원에서 한국어를 배워서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갑자기 해서 놀랐던 기억도 난다. 얼마전에는 아이가 친한 한국인 친구가 자꾸 영어로 말한다고 불평을 한다. 아이 친구가 다니는 유치원은 중국어 비중이 조금 적고 영어 비중이 높아서인지 그리고 영어를 쓰는 육아도우미와 오래 시간을 보내서인지 영어를 더 많이 쓴다. 이런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도우미는 영어 밖에 못하니까 그런거고 왜 자기랑 이야기할때 영어로하냐고 발끈한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외할머니와 통화할때 "pinyin xue해야해서 바뻐서 (한국) 못가"라고 이야기한다거나, 나한테도 영어로 얘기하거나한다. 피진이 된 말들이 재미있다. 디아스포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by 질럿 | 2021/03/27 11:38 | 유학기, 이민기, 그리고 육아기 | 트랙백 | 덧글(0)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애 취급하지 말지어다...

20대 초반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된 분께서, 처음에 긴장했는데 알고보니 자신의 자녀보다 고작 3살 많은 "애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게 되었다면서 청중을 '아이로 보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관해 명 댓글이 있어서 댓글 쓰셨던 분의 허락을 득하여 옮겨본다.

===
18살 넘어선 성인들인데, 애로 취급하면 한없이 아이가 되고, 장군으로 대하면 장군이 됩니다 ㅎㅎ
남이 장군은 18살에 등과해 25살에 병조판서, 반란 토벌 등 다 하고 다녔는데요 뭐 ㅎㅎ 
강의 듣는 생도 중에도 이미 나이와 무관한 용장들이 많이 있을거라 봐주세요. 아직 세상이 못알아본.
나라의 귀중한 자원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좋은 강의 부탁드립니다.
===

나는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나이의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지내보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나이가 훨씬 많은 나보다 부족한 점이 있지만, 어떤 부분은 내가 (벌써부터) 아이에게 배울정도이다. 공자께서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내가 중년이라고 해서 20세를 아이취급하자면,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께서 보시기에는 세상을 '아이들'이 움직이고 있는데 어찌 걱정되지 않으시겠는가.

공자께서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고 하시었다. 이를 빌어 이야기하자면, "남이 어리고 미숙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남이 보기에 내가 미숙한 점이 없는지 성찰해야할 것이다."

*추가: 찾아보니 논어 자한편에 아주 좋은 말이 나온다. 

子曰。後生可畏、焉知來者之不如今也。

“We should be in awe of the younger generation. How can we know that they will not be equal to us?"

by 질럿 | 2021/03/13 18:43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읍니다"의 음가는 무엇이었을까...?

요즘 동년배 놀이하면서 예전 감성(retro)으로 댓글 달 때에 "그립습니다"를 "그립읍니다"로 표기하는 것이 종종 보이는데, 오늘 문득 "그립읍니다"의 음가가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그립읍니다"의 음가가 "그립슴니다"였고 언중의 발음의 반영하여 "그립읍니다"가 "그립습니다"로 개정된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검색해보니 1989년 개정 이전에도 "하였읍니다"에서는 '읍'을 썼지만 "그립습니다"가 맞춤법 상 옳은 표현이었다고 한다. 나는 1988년에 한국의 공교육에 입문했기 때문에 1989년의 대대적인 맞춤법 개정안 이전에 국민학교 1학년을 보냈지만, 1년 만에 (개정이전의) 맞춤법을 모두 익히기는 역부족이었나보나.

by 질럿 | 2021/02/28 20:35 | 트랙백 | 덧글(1)

달력(calendar)의 자의성을 강조하는 반지성주의를 경계한다.

달력(calendar)의 자의성을 강조하는 반지성주의를 경계한다.

"지구의 관점에서 볼때(지질학적 시간) 인간의 1년은 찰라일 뿐이다" 혹은 "1일, 1주일, 1달, 1년이라는 것은 인간의 편의상 만들어진 약속일 뿐 지구 입장에서는 상관 없는 일이다"와 같은 식상한 표현을 요즘 때가 때인지라 많이 볼 수 있다. 새 해(양력1월1일/음력 설)에는 한 살 나이 먹어감을 아쉬워하며 1년이라 매듭짓는 것은 인간이 작위적으로 만든 단위일 뿐이라고 성토한다.

혹은 얼마 전(2021년 2월 13일) 있었던 일본 후쿠시마의 지진에 대해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 10년 지나 생긴 여진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10년이라는 세월은 지구에게는 찰나일 뿐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연(year)이나 달(month), 일/하루(day)는 '지구 입장에서는 하찮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작위적인 단위일 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구로서도 가장 중요한 단위를 꼽자면 일(day)이 있을 것이다. 1일을 주기로 밤낮이 바뀌면서 이로 인해 기온, 빍기와 같은 물리량은 1일을 주기로 진동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연(year)이 아닐까한다. 1년을 주기로 계절이 바뀌면서 일평균 기온이 같은 주기성을 띈다. 적도에 위치해 있는 나라에서도 여러가지 이유로 1년 주기로 바뀌는 날씨가 있을 정도이다.

세 번째로는 월(month) 정확히는 음력1개월(삭망월)이 중요하다. 달의 위상(phase 차고 이그러짐)에 따라서 바닷가에서는 조수가 바뀌고 이 역시 각종 물리량(간조/만조시 수위 등)이 29.5일(음력1개월) 정도의 주기성을 띄게 한다.

굳이 말하자면 "1주일"정도가 인간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시간 단위이지, 연, (음력)월, 일과 같은 단위는 지구가 느끼는 주기를 과학을 통해 밝혀내고 측정한 것이다.

by 질럿 | 2021/02/17 01:13 | 세상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클럽하우스가 걸어갈 길?!

클럽하우스에 대한 소견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지 7년이 되어가니 아이폰으로 바꾸기고 귀찮고, 처음 갤럭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의 편리함(구글과 연동)이 여전히 마음에 드는지라 아이폰으로 바꿀 생각은 없다.

다만,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소셜미디어를 아이폰 유저에게만 공개하여 초기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하는 것을 보니, 역시 애플 제품이 주는 '갬성'은 확실히 격이 다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겠다.

클럽하우스가 인기를 끄는 것은 새로운 포맷이라는 것 이외에도 힙스터 혹은 '인싸놀이' 문화의 일환이 아닐까한다. <90년생이 온다>의 독후감에서도 썼듯이, -세상사 여러 요인(멀티팩터)이 작용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서사(스토리)를 좋아하는 우리 특성상 힙스터 문화(아무나 즐길 수 없는 것을 즐기는데서 오는 기쁨)보다는 음성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포맷이 열광하는 이유라고 해석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클럽하우스 이용자의 인구학적 특성(demography)을 관찰하면서 어떤 사람들이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인다(=힙하다)라고 고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이폰 사용자에 편향된 관찰이므로 크게 유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폰 자체가 힙하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그건 08년~11년의 이야기 아닌가 한다.

나는 활자를 통한 정보 습득을 좋아하는지라 유투브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 "정보 유투브의 특징: 글로 쓰면 10초만에 읽을 내용을 10분동안 이야기한다"만 보더라도, 활자가 정보 전송량에서 우위에 있지 않나싶다. 그런고로 딱히 클럽하우스가 안드로이드 폰 앱으로도 올라올지라도 별로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이전에 새로운 포맷으로 나온 소셜미디어의 궤적을 따라가지 않을까한다. 대충 다음과 같이 말이다.

1. 00년생(혹은 10년생)을 클럽하우스 세대라고 지칭하면서 90년생을 '신인류'로 바라보듯이 신세대의 특징이 음성형 소셜미디어의 발현이라는 문화 해설
2. 주로 정치쪽의 음모론을 믿는 사상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섬 같은 모임
3. 폭력/음란 컨텐츠의 클럽하우스를 통한 유통
4. 클럽하우스를 통한 뒷광고/앞광고
5. 이미 자리잡은 줌(ZOOM),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TEAMS) 등을 제쳐주고 클럽하우스를 이용해서 '힙하게' 회의하자고 하는 '부장님들'.


by 질럿 | 2021/02/09 01:58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넷플릭스 구독료의 '실질적' 인상!

동년배들은 알겠지만 넷플릭스는 원래는 DVD를 우편으로 대여해주는 회사였다.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회사인데, 이런 오프라인 구독 경제는 여러가지 아이템으로 퍼져나갔고, 초창기의 넷플릭스에 대해서 예전에 블로그 글을 쓴 적도 있다.

이 후 넷플릭스가 더 성장하고 인터넷을 통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하였을 때, 나는 되려 넷플릭스의 성장 여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졌었다. 계정을 공유하는 것을 포함하면 넷플릭스 유료가입자수(유료계정수)는 전세계를 합쳐서 10억명 정도가 상한일 것 같은데, 10억명에 연 구독료를 고려하면 넷플릭스의 연간 매출액의 상한선이 대충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넷플릭스의 규모는 이미 사업모델을 만든 초기부터 정해져있다고 봐야하는 것아닐까했다.

그런 연유로, 넷플릭스가 구독료를 인상하지 않는다면 광고를 삽입한다거나, 콘텐츠와 관련된 상품을 판매한다거나, 혹은 지역별 음식배달 서비스와 연동하여 넷플릭스를 몇시간 연달아 시청하는 '폐인'들에게 음식 배달 중개를 한다거나하는 식의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이 가미되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아직까지는 넷플릭스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

다만, 요즘 깨닳은 것은 넷플릭스 외에 디즈니, 애플 등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진출하면서 스트리밍 시장의 전체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위에 말한 '넷플릭스 매출액 규모'라는 것을 '스트리밍 서비스 매출액 규모'로 바꾸어 보면 이해가 되었다. 넷플릭스가 구독료를 올리는 대신에, 다른 스트리밍 사업자가 진출하고 소비자들도 넷플릭스 이외에도 디즈니 혹은 애플에 가입한다면 결국 넷플릭스(정확히는 스트리밍 서비스지만)의 구독료가 인상된 것과 같은 효과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콘텐츠 저작권자인 디즈니나 HBO가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자체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고, 이로 인해 2019년 이전의 넷플릭스와 같은 효용을 얻으려면 넷플릭스 이외의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해야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지출하는 돈이 늘어났고, 이는 예전에 내가 생각하던 넷플릭스의 구독료 인상과 비슷한 궤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by 질럿 | 2021/02/04 00:15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1928년의 한국어 녹음본을 듣다!

이극로선생의 90년전 한국말 육성 녹음.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1. 전체적인 억양은 내가 어렸을 적, 1980년대에 듣던 서울말 억양 혹은 그 이전에 제작된 영화에서 나오던 서울말 억양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사투리 말고, 당시의 표준어 억양.

2. [애]와 [에] 그리고 [얘]와 [예]의 발음 구분이 정확하다. 나도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이들 발음을 구분했었는데 어느새 [얘]도 [예]에 가깝게 발음하고 [애]와 [에]도 점점 구분이 없어졌다.

3. 1세기 전의 말인데도 내가 알아듣는데 문제가 없다. 대충 20세기 초에 현대 한국어가 완성되었다는 것이 여기서 인증되는 것일라나. 물론, 나는 1928년 당시에 한국말을 구사하던 웃어른들과 어렸을 적에 대화한 적이 많았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by 질럿 | 2021/01/28 23:59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DJ DOC가 말했듯 - 나는 나에요 상관 말아요...

삼호어묵 님의 조선일보 기고글에서 발췌한 내용

=== 
나는 내가 남들보다 공부 좀 잘한다고 해서 ‘아니 공부가 왜 그렇게 어려워? 수업만 열심히 듣고 기출 문제만 좀 풀어봐도 성적 잘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말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남들보다 돈 좀 더 번다고 해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왜 그것밖에 못 버냐, 그러다 말년에 폐지 줍는다’ 하고 말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유독 나 살쪘다, 나 운동 안 한다 하면 훈장들이 어디선가 한 트럭씩 나타나서 훈계를 해댄다. 덜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되는데 그게 그리 어렵느냐는 둥 운동 안 하면 온갖 병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아니 공부는 교과서 위주로 예습·복습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그래서 다들 서울대는 가셨는지?
===

한국 체육관에서 개인트레이닝 지도를 받을라치면 나를 머슬매니아에 내보내려는 듯이 식단조절까지 시키려고 한다. 그러는 트레이너를 보면 붙잡고 "arctan 적분 해봐!"라고 하고 싶다.

나는 마음을 표현 할 수 있는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어야한다 뭐 그런거를 '필수'로 압박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아크탄젠트 적분이나 곡률이 0이 아닌 휘어있는 공간에서의 빛의 경로(측지선, geodesic)를 계산하라고 시키지 않듯이 말이다.

DJ DOC가 말했듯 - 나는 나에요 상관 말아요...

by 질럿 | 2021/01/20 22:26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은 일상생활을 할 때와 다를 바 없는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은 일상생활을 할 때와 다를 바 없는가? 당연히 답은 아니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감염되지 않았을 때에 비해 평균적인 사망률을 유의미하게 높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죽는 사람은 원래 약했던 사람이라 다른 원인으로 돌아가실 분들이 코로나 감염으로 죽었을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할 때에는 기저효과(baseline)를 먼저 봐야하는데, 70대의 코로나 감염시 치명률이 5.75%라고 했을 때에 코로나 감염이 없을 때도 사망률이 연간 몇% 정도 되는지 부터 생각해보아야한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70대 어르신들이 매년 20분 중 1분이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70대의 1000명당 사망자수는 20.9명으로 %로 환산하면 2.09%의 사망률을 보인다. 그리고 위의 치명률 5.75%는 연간이 아니라 단순히 감염 되었을 때의 사망하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므로 거칠게 나마 연간으로 환산하면 한국에서 코로나 감염증이 대유행을 한 것이 10개월 남짓이므로, 1년간 2.09%가 사망하는 비율과 단순 비교 할 수는 없다. 따라서 1년간 2.09%가 사망한다면 계절적 요인을 무시할 때에 10개월 동안은 1.74%정도의 사망률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제 5.75%와 1.74%를 비교하자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 될 경우 사망률(치명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y 질럿 | 2021/01/10 21:35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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