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신 관계로 우리집에는 예전부터 두껍고 복잡한 내용의 책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에 그 중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책을 우연히 훑어보게 되었다. 그 책은 '탈근대'에 대한 화두로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탈근대라. 근대에서 탈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바로 그 근대는 무엇인가? 당시의 초등학생은 10년이 더 걸려서야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 초등학생(나)이 세상에 대해 눈을 뜨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199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탈근대라는 조류가 몰아닥친 시대였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었다. 그 즈음에는 절대로 교류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공산권 동유럽(헝가리)의 상품이 백화점에 진열되었다. 1992년에는 텔넷 방식의 컴퓨터 통신회사인 케텔(KETEL)이 한국정보통신(KORTEL) 유료화되었고 나는 나름 그 격동의 순간에 인터넷의 전신이라할 컴퓨터 통신을 시작했다.(*1) 그 때 이미 (한국) 철도청에서는 컴퓨터 통신을 통한 기차표 예매를 실시했었다. 즉, 나는 근대화의 산물에 경탄하셨을 나의 아버지,어머니나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와는 달리 근대의 산물들을 구식으로 생각하는 법부터 배웠던 것이다. 중고등학교때에는 사회 교과목 시간에 이미 냉전종식 후의 국제 질서, 그리고 탈근대화 시대의 사회/산업 구조에 대해서 역설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에게 근대 사회는 활자화된 옛날-르네상스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내가 군복무를 하던 시기는, 사회에 비해 변화가 느리다는 것이 정설인 군대도 이미 탈근대화가 시작 된 이후였었다.(*2)
이렇다 보니 나는 지금껏 근대화의 산물에 대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온듯하다. 어떤 것의 소중함을 알려면 없이 지내봐야한다고 했던가. 짐을 옮길 때 아무런 도구 없이 맨손으로 옮기다가 비탈길(빗면)을 이용한다거나, 수레를 구해서 옮긴다거나 하면 도구, 바퀴가 얼마나 편리한지 알 수 있다. 사실 이곳(로스앤젤러스)으로 와서 처음 정착할 때에는 아무것도 갖춰지있지 않았기 때문에 맨손으로 모든것을 옮겨야했다. 그 후, 바퀴를 발명한 고대인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흔히들 말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후기산업사회에서 버릴 것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고들한다. 대신에 소품종다량생산이라든지 맞춤형생산(*3) 또는 생비자(prosumer)(*4)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개념은 과연 시대에 뒤떨어진 형태일까? 산업혁명 이후 공업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농업이 식량공급을 위해서 필수적이었듯이 21세기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서도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여전히 공업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대량생상-소비 구조에는 근대 교육도 포함된다. 표준화된 능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데에는 대량교육 만큼 효율적인 제도가 없을 것이다. 내가 나름의 밀리터리 매니아인지라 군사와 관련된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바로 총, 특히 소총(*5)을 꼽고 싶다. 나는 기본적으로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못하고 기계를 치밀하게 잘 다루지도 못한다. 하지만 기계화된 생산 공정을 거친 소총을 다루는 방법을 근대화된 방식, 즉 대량 교육의 방식으로 배운 나는 나폴레옹 시대의 직업군인(적어도 영국군은 모병제였기 때문에 상당히 숙련된 병력이었다.)에 비해서 훨씬 높은 명중률을 자랑한다.(*6)
언제나 더 나은 상태로 갈 수 있는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근대 사회와 근대 사회에 사이에 있었던 도약적인 발전은, 21세기인 지금에는 비록 시시해보일지라도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실로 중요한 도약이었음을 주지해야한다. 나의 전공으로 잠깐 돌아가자면 20세기에 태동한 양자역학과 19세기말 부터 정립된 통계역학은 '근대 사회'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탈근대 사회를 불러왔다. 하지만 18세기에 연구된 고전물리학은 말그대로 물리학이라는 분과를 새로 열었고, 이 고전물리학만으로도 태양계의 운동을 정확히 서술하고 산업화 가능하게한 각종 기계장치를 만드는데 충분했다.(*7)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지 않으면 간과하기 십상이지만 이러한 성과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것이다.
우리가 근대 사회의 '폐해', 근대 과학의 '맹점'을 쉽게 찾아내고 비판하고 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사회가 이미 탈근대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사회 시기에는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전체를 보기 힘들었으나 탈근대화 이후에 근대 사회에 대해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 보기에 그러한 일들이 가능해 졌으리라. 인류문명사에서 부분을 떼어내서 꼭 정독하자면 나는 '근대화' 부분을 택하고 싶다. 그만큼 근대화 과정은 인류의 문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근대를 16세기~20세기 정도로만 잡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근대란 딱히 인류문명사의 한 마디가 이니라, 특정 분과의 체계가 성립되고 기본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각각의 시기를 모두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지에서 보자면 철학의 근대는 고대 그리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말하고 싶고, 과학의 근대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8) 내가 지식을 찾의 방랑하는 지식방랑자로서의 생활을 영위하자면 이러한 각 분과의 근대화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그 주요 과제가 될 듯하다.
== 주석 ==
*1: 당시에는 2400 bps 모뎀(요즘 한국에서 사용하는 고속/초고속인터넷의 1000분의 1도 안된느는속도)을 사용했다. 사실 나는 초기 컴퓨터 통신 사용자는 아니다. 한국의 초기 사용자는 1988년경 부터 나타났고 600 bps 모뎀 또는 이보다 느린 속도의 모뎀을 이용했다.
*2: 탈근대화에 대한 정의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군복무하던 당시에 이미 군용통신망(intranet)을 통해서 핸디오피스로 전자문서(공문)를 전자결재하였으므로 어느정도 탈근대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맞춤형 생산
*4: 생비자는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라라는 뜻으로 사용자 본인이 편집할 수 있는
위키백과와 같이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제구조의 참여자를 지칭한다.
*5: 정확히는 금속제탄피를 사용하는 후장식 소총(rifle)으로 특히 기계로 가공한 종류
*6: 나폴레옹 시대의 머스켓 소총의 명중율은
바니맨님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7: 내연기관(engine)에 대한 물리학적인 연구는 통계역학의 탄생을 낳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고전역학, 열역학을 근대 과학으로, 양자역학, 통계역학을 현대 과학으로 칭한다.
*8: 이렇게 각 분과 마다 처음 번성하는 시기가 다른 것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