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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여지가 있는 명령은 항상 오해되기 마련이다. (2010-Feb-15, Mon)

Any order 

that can be misunderstood 

will be misunderstood.


- Von Moltke the Elder

at the outbreak of the Franco-Prussian War



질럿의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위의 인용구는 제가 좋아하는 인용구입니다. 군대에서의 명령 뿐만 아니라 사람들간의 의사 소통은 항상 오해의 여지를 최대한 피해야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무엇이든 중복해서 적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예컨데 2010년 2월 15일이면 '당연히' 월요일이므로 요일을 따로 적는 것이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중복해서 적는 것이 오해를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닳고 나서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항상 적당한 중복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저의 블로그에 있는 글이 오해의 여지가 적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위의 인용구와 같이 함께 오해를 줄여나가며 대화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by 질럿 | 2011/12/31 23:59 | 세상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9)

유학기 - 내가 "잘 못 들었습니다?"라고 하는 이유...

이곳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종종 한국 기업에서 채용설명회를 와서 찾아가거나하는 이유로 정중한 한국말을 구사해야할 때에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말투가 좀 군대식이시네요. 제대한지 상당히 되지 않았어요?"

나는 2005년 1월에 육군 병장으로 전역하고 2006년 8월에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역 후에 1년 반 정도가 지난 후였으니 군대식 말투가 사라질만도 한데 군대식 말투를 쓴다는 말은 전역후 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종종 듣고는한다. 자평하기로는 한국에서 정중한 한국말을 구사할 기회가 군대에서 밖에 없었고 따로 회사를 다니는 등 사회생활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유일한 경험이었던 군대에서의 경험을 살려서 말을하다보니 군대식 말투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이 문제를 갖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는것 같다. 바로 미국에서 살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목에 적어둔 "잘 못 들었습니다?"는 군대에서 상급자에게 "네?"라는 식으로 다시 말해 달라고 하면 무례해보이기에 대신 제대로 못들었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이를 영어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이렇다.

"네?"라고 되묻는 것은 "what?" 혹은 "ha...?"와 같이 짤막하게 "뭐?"라고 되묻는것과 같아 보인다. 대신에 조금만 정중하게 말을 하자면  "뭐라고 하셨어요?"에 대응되는 "what did you say?" 또는 "I couldn't hear you well"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격식을 차리자면 (고풍스럽지만 영어 교과서에 나오듯이) "pardon?"이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excuse me"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what"을 제외하고는 한국말로 의역하자면 "잘 못들었는데요.", "죄송합니다." 혹은 "다시 말씀해주세요"정도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요즈음 더더욱 공적인 자리에서 한국말을 할 때에 "잘 못들었습니다?"와 비슷한 표현을 쓰게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보통 한국에서는 "예..?"라는 식으로 못 들었으니 다시 말해달라고 표현을 하는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과연 한국어는 직역했을 때에 영어보다 표현이 좀 덜 정중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내 생각은 '직역'하면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항상 의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thank you"(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상당히 자주한다. 사소한 것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미국 사회에 비해서 좀 더 드문 경우라고 본다. 일례로 지난 여름에 한국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에, 홀 서빙하는 아주머니께 밑 반찬을 받고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카운터쪽을 향해서 "칭찬노트 써주세요"라고 했다. 아마도 손님에게서 고맙습니다는 사례를 받으면 식당 자체적으로 기록해서 보상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깨닳은 것이 있는데, 바로 직역하면 같은 뜻인 "thank you"와 고맙습니다가 사실은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다른 값어치를 같고 있다는 점이 었다. 한국 원화와 미국 달러화의 교환비율이 있듯이, 한국과 미국의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교환 비율이 있는 것 같다.

다시 "잘 못 들었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돌아오자면, 한국에서 "예?"라고 말하면서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것과 미국에서 "what?"이라고 하는 것은 직역하면 같은 뜻이지만 각각의 사회 안에서 갖는 정중한 정도는 조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죄송합니다 못 들었습니다" (혹은 군대식으로 '잘 못 들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맥락에서는 보통이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정중한 혹은 자신을 너무 낮추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이러한 한국어와 미국어 사이의 '환율'을 파악해서 한국어를 구사해야겠다. 영어도 못하면서 한국어가 점점 이상해져간다.

by 질럿 | 2011/11/06 14:13 | 미분류 | 트랙백 | 덧글(3)

주변 사람들 어록...(2) 올해 초에 일어났던 일..

주변 사람들 어록...(1)에 이어서 한 편 더 써본다. 지난 1월 26일에 미국 콜로라도 주의 아스펜으로 학회를 갔다. 그 곳에서 쉬는 시간에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서 어깨를 다쳤고, 이 때문에 한국에 가서 수술하고 3월 말까지 치료를 하다가 돌아왔다. 그 간 있었던 일을 '어록'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


It's all written in the envelope. 
But we know physicists are not good at reading.
(그 봉투안에 보면 다 적혀 있어요. 물론 물리학자들이 읽기에 서툴다는 것도 압니다.)


지난 1월 22일 엘에이를 출발하여 콜로라도 주의 덴버를 거쳐서 아스펜에 도착했다. 토요일 저녁 부터 학회 개회식과 환영식이 벌어졌고, 맥주를 마시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만나고 재미있었다. 학회장은 휴양도시인 아스펜에 자리잡은 아스펜 물리 연구소였다. 학회장 안의 무선인터넷(WiFi)망의 비밀번호를 모르겠어서 그 곳 사무직원에게 물어보자 자상한 미소를 띄우시면서 저렇게 답해주셨다. 처음 등록할 때에 나눠준 봉투에 다 들어있다고. 하지만 일단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알려는 주셨다.

이런 일은 작년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3월 미국물리학회에서도 있었다. 학회장은 아주 큰 컨벤션 센터였고 물리학회 명의의 무선인터넷망이 있었다. 비밀번호를 잘 모르겠었지만 '누군가 옆에 사람'에게 물어봐서 알아냈다. 얼마 뒤 어떤 다른 물리학자가 나에게 무선인터넷망의 비밀번호를 물어봤고, 내가 친절히 답해주었다. 그랬더니 나에게 물어봤던 그 사람은 대체 어떻게 비밀 번호를 알았냐고 했다. 나는.. 옆에 사람에게 물어봤다고 대답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에도 우리에게 나눠 준 어느 봉투에 쓰여있었을 것 같다. 물론, 물리학자들은 잘 읽지 않는다.


I know I am very bad at physical activity (yes! My dad said so!) 
But figured out not that bad today...
(아버지 말씀대로 내가 몸치인건 알건만, 그래도 오늘 보니 그리 나쁘지는 않네..)


토요일 저녁에 아스펜에 도착하여 일요일부터 아침/저녁으로 학회 발표가 있고 낮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당연히 스키를 타기로 결정을하고 스키 복이 없는 나는 일요일 낮에 중고 매장에 가서 스키용품을 장만했다. 그리고는 월요일 낮의 자유시간부터 스키를 탔는데 아스펜 물리연구소에서 '물리학자'들이 단체로 스키 강습을 배울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치였는데, 이곳에서 다른 물리학자들과 스키 강습을 배워보니 (물론 이전에 2번정도 타봤지만) 다들 너무나도 몸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감동 받아서 그 날 저녁에 페이스북에 위와 같이 썼었다.


물리학자는 세 명만 모이면 실험이 중요하냐 이론이 중요하냐 놓고 싸우는듯... 
내 앞에서 실험 물리학자 세 명이 그걸 놓고 싸우고 있다...


물리는 자연 과학/공학 중에 거의 유일하게 (요즈음에는 이론화학이라는 분야도 정립되고 있다만) 이론과 실험이 크게 나뉘어있다. 일단 다는 이론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학회장에서 캠브리지에서 온 실험 물리 전공의 대학원생들을 만났다. 첫 날 환영식에서 만나서 맥주마시면서 재미난 이야기도하고(미국애들은 미식축구를 풋볼이라고 부른다고 까면서;;) 스키도 같이 타고, 식사도 같이하곤 했다. 화요일 저녁에 식사를 하고 맥주 마시러 간자리에서 실험 물리하는 친구들이 이론이 실험보다 중요해! 라면서 자기들끼리 논쟁하고 있었다. 흠.. 제대로 이론 물리의 개념을 정립 못한 나로서는 심히 부끄러웠는데, 여튼 물리학과 학생들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주제 중에 하나가 바로 이론 대 실험 인듯.


우와! 백두산 보다 높은 곳에서 스키를..


어깨를 다쳤던 수요일에도 스키를 타러 왔다. 스키를 타다보니 내가 스키타는 곳의 해발 고도가 얼마나 되는지 표지판에 쓰여있었는데 계산해보니(단위가 피트=0.3048미터 로 되어있으므로..) 백두산 보다 높은 곳이었다. 그리하여 이런 곳에서 스키를 다 타는구나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곤... 얼마 있다가 넘어져서 어깨를 다쳤다.


Do you mean South Korea? Or US?
(한국? 아님 미국요?)


슬로프에서 내려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옆에 엑스게임을 위해 만들어놓은 장해물 가를 지나다가 얼음이 얼었는지 턴하다가 넘어졌다. (역시 알고보니 몸치가 맞았다!) 일어서려는데 왼팔이 너무나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엎드려 있는데 지나가던 다른 스키어들이 괜찮냐면서 물어보고는 안전요원을 불러주었다. 처음 온 안전요원은 구급요원은 아니었고 무전기로 구급요원을 부르고는 내가 정신을 차리고 고통을 잊을 수 있게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를 시켰다. 구급요원이 도착했고 나는 들것-썰매에 실려서 구급차로 갔다. 그곳에서 구급차를 타고 근처의 병원(아스펜은 고급 휴양-스키 도시라서 그런지 정형외과와 피부-미용관련 병원이 아주 많았다.)으로 실려갔다.

구급차 안에서 구급요원이 치료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적사항 등을 물어보면서 혹시 머리에 충격이 갔는지 알아보겠다면서 간단한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일단 나는 "내가 말을 빨리 못 해도,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영어를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참조해달라"고 말한 후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Where are you now? (지금 여기가 어디죠?)"

빅뱅 이론의 셸든이었으면 바로 뇌에 충격을 받았다고 진단을 받도록 대답했을 만한 질문! 이것 참, 앰뷸런스 안이라고 해야되나, 지구별이라고 해야되나 고민하다가 최대한 정상인에 가깝게 "콜로라도 주, 아스펜이에요. (Aspen, Colorado)"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외에도 어려운 질문은 계속되었는데...

"What day is today? (오늘은 무슨날인가요?)"

"Who is the president? (대통령이 누구지요?)"

오늘이 무슨날이긴, 내가 스키타다 넘어진 날이지. 물론 정상인으로 빙의해 "1월 26일 수요일"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앞에 그레고리력으로 2011년이고 미국 산악시간대로 1월 26일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패스했음!) 대통령에 대한 질문은 더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한국의 대통령이 궁금한지 미국의 대통령이 궁금한지 위와 같이 물어본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궁금하시다길래 "바락 후세인 오바마"라고 정답을 말했다. 후송된 병원에서 뇌 영상촬영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일단 정상인으로 분류된 듯하다.


I don't know whether my shoulder was out 
because I never get shoulder dislocated...
(어깨가 빠져본적이 없어서 빠졌던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스키장에서의 구급요원이 팔에 부목을 대주었고 이를 그대로 차고 정형외과 응급실로 이동했는데 일단 상처부위를 보기 위해서 옷을 벗는데 너무 힘들었다. 팔이 아파서 말이지.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봤는데 팔의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아픈부위는 분명히 팔꿉치 위쪽의 팔인데 말이다! 그러더니 혹시 어깨가 빠지지 않았었냐? 라고 자꾸 물어보았다. 그래서 위와 같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결국 CT촬영을 해보니 어깨가 많이 다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말을 듣자마자 팔 대신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Thanks God! I'm right handed.
(오른손잡이라 다행이에요.)


응급실에서 내 어깨가 어떻게 된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데 손짓으로 어깨 관절이 이래저래 되었다고 설명을 해줘도 영어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통역이 필요했다. 마침 이모부 부부가 모두 미국에서 의사였기 때문에 전화를 드려서 설명을 듣고 나에게 통역을 해주십사하고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두 분다 마취과이신지라 어깨뼈와 관련된 해부학 용어가 가물가물하셔서 이모깨서는 통화를 하시고 이모부께서는 옆에서 해부학책을 찾아보시면서 통화를 하셨다고한다. 덕분에 일단 수술을 꼭해야하니 엘에이 돌아가서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은 한국에 가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응급실에서 나왔다. 적잖은 짐을 챙기고 옷을 입고 하는데 그나마 오른손잡이인 내가 오른손은 제대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병원 직원과 이야기하면서 오른손잡이라 행복해요... 라고 말했었다.


I'm perplexed.
(뭔일인지 모르겠군..)


26일 저녁에 아스펜에서 엘에이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서 또다시 바로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 그길로 집에 들려서 짐을 내려놓고는 어머니와 병원에 가서 간단한 진료를하고 수술을 위해 바로 입원했다. 지도교수에게는 통화가 안되어서 음성 메세지만 남기고서 한국으로 왔고 이메일로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지도교수가 왜 엘에이에서 수술안하고 한국까지 갔냐고 물어보면서 한 말이다.

수술을 전후해서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나를 보살펴주실 수 있었고, 말도 통하고 보험도 잘 적용되고 (미국에도 보험은 있으나 본인 부담금이 얼마나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이점이 많은데 지도교수는 이를 몰라주었다. 미국에 있으면 수술 직후에 밥먹고, 씻고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었을텐데 말이지. 어찌되었건 나는 28일 금요일 아침에 한국에 도착해서 30일에 수수을하고 설 연휴 직전인 2월 1일에 퇴원을 했다. 그 후, 수술한 부위가 아물고 또 재활을 하는 험난한 과정이 남기는 했지만.


이건 오른손으로도 안될 것 같은데요?


수술후 한 달이 지난 2월 28일부터 재활 운동을 시작했다. 부목(sling)을 벗고서 일단 팔을 펴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또 왼팔은 원하는데로 움직이지도 않고 2달이 넘게 지난 지금은 어느정도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왼쪽 어깨를 완전히 돌릴 수는 없다. 한국에서 재활 운동을 할때에는 재활치료사의 지시하에 이런 저런 동작을하는데 종종 성한 오른쪽 어깨/팔로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동작도 있었다. 그래서 위와 같이 말하고 오른쪽으로 해보면.... 놀랍게도 다 되었다! 이런 동작 중 하나는 반사신경을 회복하기 위해서 왼손으로 조그만 공을 들고 있다가 살짝 놔서 떨어지는 공을 쫓아가서 다시 잡는 것! 왼손으로 할때에 잘 안되어서 오른손으로 해보니 아주 잘되었다. 이런... 갈길이 멀다.


Physically, not OK. But physics-wise, it should be OK.
(물리적으로 힘을 쓰지는 못하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는데는 지장이 없을듯해요.)


3월 23일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3월 28일에 새학기가 시작하므로 이에 맞춰서 돌아오는 것이 괜찮을 것 같았다. 돌아와서 지도교수를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괜찮냐? (Are you OK)"라는 질문에 저렇게 대답했다. 일단 공부하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일주일에 2번이상은 재활 치료를 가야하고 하루에도 여러번 틈틈히 재활운동을 해줘야되어서 성가시다.


Rehab is not only tiring and boring but also frustrating... 
I started admiring injured athletics who are coming back to the field...
(재활은 피곤하고 지루할 뿐만아니라 좌절감을 안겨준다. 
재활에 성공하고 재기하는 운동선수들이 존경스럽다.)


4월에 들어서 재활을 지속하면서 든 생각이다. (여기에도 친구와 지인과 친척이 많이 있지만)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하면서 진척이 더딘 재활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달정도하고 나니 왼쪽 팔을 올리는 것이 거의 다 되어간다. 180도로 올리는 것이 목표인데, 벽잡고는 160도정도 올라가고 없이 그냥 올리는 것도 140도정도는 되니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7월까지 좀 더 잘 해보아야겠다. (7월은 재활을 시작할 때에 심한 운동을 제외하고 정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했던 기한..)

by 질럿 | 2011/05/09 06:32 | 세상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내가 좋아하는 시..


1 년 전 쯤에 누군가가 본인의 홈페이지에 시를 몇 가지 적어놓았었다. 답글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나에게도 좋은 시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였기에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또, 내가 여기에 적을 시가 좀 독특하지만) 적어본다. 따라서 그 '누군가'께서도 이 글을 보시면 답글을 부탁드린다.


죽음


슬퍼하지 않겠다
슬프지 않다
누가 죽어도
슬퍼할 줄 아느냐
슬퍼한 것이
슬플 뿐
쓸데없는 짓이다

슬퍼진다 너야말로
슬퍼하는 나도
빠른가 늦은가의 차이 있을 뿐
결국은 죽으러 왔다

군대가 아닌가
슬픈 눈물 같은 것
흘릴 줄 아느냐

中地淸 작 "無名兵士の詩集" 중에서,
"일본의 군대"(요시다 유타카 저)로부터 재인용

슬픈 감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이 것은 군가는 아니지만 나는 군가를 좋아한다. 내가 군가를 좋아한다고하면 어떤 이들은 내가 단순히 밀리터리 매니아라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이유의 절반일 뿐이다. 내가 군가 중에 좋아하는 것은 위의 시와 같이 감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군가이다. 군가는 모두가 같지 않다. 고향의 향수(정확히는 송창식의 병사의 향수)와 같이 심금을 울리는 가사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쓰고 싶다.

저 시를 처음 봤을 때 일본어에서 번역한 시임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죽음과 마주선 사람의 느낌...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시는 노래이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지...

"참호에 갖힌 제1차 세계대전(Eye Deep In Hell)"(존 엘리스 저)로부터 재인용


위는 유튜브에 있는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노래이다. 이 노래 가사 역시 한 편의 시이다. 자조적인 절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가. 재작년에 짤막하게 적었던 나의 음악론의 2편을 아직도 못 적고 있는데 이번 포스팅을 기화로 2편을 구상해 보아야겠다.

by 질럿 | 2011/05/07 16:19 | 좋아하는 가사(Lyrics) | 트랙백 | 덧글(0)

영화 대부(The Godfather)와 드라마 마이더스

드라마 마이더스는 SBS에서 방영하는 월화 드라마인데 주식 드라마라고해서 1편부터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엔하위키에 나와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대부(The God Father) 시리즈를 구매하여 1편과 2편을 모두 보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 마이더스에서는 영화 대부에 나온 인용구가 많이 나온다.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은

"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내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Keep your friends close, but your enemies closer"
(친구는 가까이, 하지만 적은 더 가까이에...)

이 두개의 인용구이다. 여기서 첫 번째 인용구는 극중에서 한국의 헷지펀드 론 아시아의 대표 유인혜(김희애 분)가 후계자 싸움에서 가문의 고문 변호사로 들어온 김도현(장혁 분)을 포섭하려고 할 때에 인용된다. 나름 영어로 대사를 하는데 바로

"I'm going to make you an offer that you can't refuse"

드라마 마이더스에서는 거절할 수 없을 만큼의 좋은 조건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로 쓰인다. 나도 드라마를 처음 볼 때에는 이러한 의미라고 생각했었는데 영화 대부를 보니 여기서 '거절 할 수 없는 제안'이란 거절하면 죽이겠다는 경고장이었다! 이 드라마 마이더스 상에서의 의미도 나름 멋지만, 대부에서 원래 쓰인 의미는 전혀 다른 멋있다기보다는 무서운 의미이다. 

그리고 두 번째 대사는 최국환 변호사가 사법연수생이던 김도현을 스카우트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유인혜에게 설명할때 나온다. 최변호사가하는 말은  김도현이 경제 범죄에 대한 법리 해석을 너무도 명석하게 하기 때문에 적이 되었을 때 위험할 수 있다면서 유인혜에게 "친구는 가까이, 하지만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말이 있잖아?"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 대부에서 저 대사는 초대 대부인 비토 꼴레오네(Vito Corleone)가 아들 마이클에게 자기 패밀리 내부의 적(배신자)를 찾아내려고 할 때에 한 말로서, 너무 유능한 인물을 적으로 돌리지 말자는 마이더스 극중 최국환의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요즈음 블로그에 글을 쓴지 오래되어서 한 번 최근에 본 드라마와 영화로 포스팅을 하나 마련했다. 역서 드라마 작가를 비판하려는(속된 말로 까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영화 대부에 대한 나의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다.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알려주시기 바란다.

by 질럿 | 2011/04/07 15:06 |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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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추천합니다!

by 질럿 | 2010/12/09 09:10 | 세상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옥수수의 습격을 보고..

최근에 아마씨 선식을 샀다. 안 그래도 아침 마다 선식을 두유에 타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고는 했는데 얼마전에 한남체인에 갔다가 아마씨 선식이 있기에 산 것이다. 얼마전에 "옥수수의 습격"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거기서 (무언가 어려운) 옥수수에 많은 오메가-6 지방산이 이러한 옥수수를 먹고 자란 동물의 고기, 우유 등에도 오메가-6 지방산이 많은 관계로 이를 먹는 사람의 몸에도 역시 오메가-6 지방산이 축적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오메가-6 지방산이 오메가-3 지방산에 비해 현저하게 많을 경우 신진 대사가 느려지고 하여, 살이 더 잘 찐다기에 오메가-3 지방산을 보충하기 위해 아마씨 선식을 구입한 것이다.

역시나 나 또한 이런 다큐멘터리에 영향을 받는 일개 개인이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옥수수의 습격"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오메가-6 지방산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과정이 그다지 '과학적'이 아니다. 우선 건강 뉴스의 기사를 확인해보자. 제일 먼저 의문을 표시하고 싶은 것은 해당 기사와 같이 머리카락의 성분을 탄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옥수수에서 온 탄소의 비율'을 찾는 다고 하는 부분이다. 탄소의 동위원소는 질량에 따라서 탄소12, 13, 14와 같이 총 3 종류가 있다. 이 중에 탄소12가 일반적인 탄소이고 나머지 탄소13과 탄소14는 자연계에 조금만 존재하고 공기안에 있는 이산화탄소에 포함된 탄소를 보면 탄소12와 탄소14의 비율은 거의 일정하다. 동물/식물이 죽고 나면 탄소14는 탄소12로 바뀌기 때문에, 탄소14의 비율을 측정하면 이들이 죽은지 얼마나 되었는지 추정할 수 있고, 이것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탄소 측정이 옥수수와 무슨 관계일까?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이 그냥 몸에 있는 탄소의 몇 %가 옥수수에서 왔다는 식으로 방송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다큐멘터리의 도입부에서는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옥수수 사료를 먹지 않은 동물에서 얻은) 고기, 우유, 버터 등을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한 미국인과 프랑스인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옥수수 사료를 먹지 않은 동물의 고기/유제품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식의 ㅈ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과학적인 실험에서 얻어진 주장이 아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반박은 오메가-3 지방산 위주의 고기/유제품을 먹어서 살을 뺏다는 사람들이 과연 실험 이후(오메가-3 지방산 위주 식사 시작 이후) 그 이전에 비해 적은 양의 칼로리를 섭취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오메가-3 지방산 위주의 식사로 살을 빼는 것을 검증하려면 다음과 같은 2가지 실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1. 실험 대상자를 임의로 2개의 그룹으로 나눈 다음, 첫 번째 그룹은 평소대로 식사를 하게하고 (일일 섭취 열량이 평균적으로 실험 전과 같게 조정) 두 번째 그룹은 오메가-3 지방산 위주의 식사를 하되 섭취 열량은 실험 이전과 같게 유지한다. 즉, 오메가-3 지방산 위주의 식사를 하는 두 번째 그룹은 같은 열량(같은 양)을 섭취하되 오메가-6 지방산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실험에서도 명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흔히 말하는 두 번째 그룹이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고기/유제품을 섭취한다면 이는 마치 '황제 다이어트(단백질 위주로 식사를 해서 몸의 지방을 태우는 것)'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실험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2. 실험 대상자를 임의로 2개의 그룹으로 나눈 다음 같은 양의 고기/유제품으로 식사를 계속하도록한다. 단, 절반은 옥수수 사료를 먹은 동물에서 나온 고기/유제품을, 나머지 절반은 풀을 먹고 자란 동물에서 나온 고기/유제품(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게한다.

2번 실험을 통해서 단순히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6 지방산의 양만 다른 경우의 영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견지에서 다큐멘터리 중간에 나오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기를 먹게하고 피 검사를 통해 콜레스테롤 수치 등을 확인하는 실험도 비판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처음에는 옥수수를 먹여 키운 소고기를 먹게하고 몇 달이 지난 후에는 옥수수와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식물을 먹여 키운 소고기(이 소고기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음)를 먹에 한다. 각각 고기 파티가 끝나고서 피검사를 한 후, 두 경우를 비교하는데 이는 실험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두 실험 사이에 3달인가 하는 시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하자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3. 먼저 옥수수를 먹여키운 오메가-6 지방산이 많은 소고기를 먹고 피 검사를 해서 기록해둔다. 다큐멘터리데로 3 개월 후에,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고기가 준비되면, 처음 실험에 참여했던 학생을 임의로 2 그룹으로 나눈다음 기존의 소고기(오메가-6 지방산이 많음)와 새 소고기(오메가-3 지방산이 많음)를 각각 먹게 한다. 그러면 이 두 개의 그룹의 피 검사를 3 개월 전의 피 검사와 비교하면 정말로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고기를 먹었을 때에 몸에 좋은지 알 수 있다.

이 소고기 먹고 피 검사를 하는 실험은 어느 대학교 교수가 한 것인데, 명색이 교수인데 실험을 엉성하게 (대조군 없이) 했다는 것에 실망했다.

이런 다큐멘터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와 같이 제목도 자극적이고, ("습격"하다지 않나..) 성우도 목소리 좋기로 유명한 연예인인 경우에는 더더욱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큰 영향력이 있는 매체를 다루는 사람은 좀 더 공정하고 과학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특히나 지상파 방송이라면, 지상파 방송 주파수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강조하고 싶다.

by 질럿 | 2010/10/31 13:47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8)

한국의 전통 과학과 수학! (스압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음)

* 싸이엔지(www.scieng.net)에서 퍼옴.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이다.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by 질럿 | 2010/09/16 05:12 | 따옴(Quotation) | 트랙백(2) | 덧글(9)

우편 대여 서비스 - 디브이디(DVD), 교과서/책, 그리고 아기옷

디브이디(DVD), 교과서/책, 그리고 아기옷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구입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한 번 사용한 이후,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DVD'는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보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대학교 교과서의 경우 해당 학년, 학기가 끝나면 다시 안 펼쳐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음 단계 수업을 들을때 참고로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그리 자주있지 않다. 아기 옷은? 새로 태어난 아기는 쑥쑥자라기 때문에 2,3개월 단위로 새로운 옷을 입혀야한다. 즉, 'DVD', 교과서, 아기옷은 짧게는 1일부터 길게는 1년 정도만 유용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짧다면 짧은 기간을 위해서 새로운 제품(DVD, 교과서, 아기옷)을 사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적잖은 지출이 된다. 이러한 점을 파고 든것이 바로 우편을 통한 대여 서비스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넷플릭스(NetFlix)라는 'DVD' 우편 대여 서비스를 알 것이다. 바로 헐리우드 비디오나, 블록버스터와 같은 전통적인 'DVD' 대여점을 문닫게 만든 원흉(?)으로 고객이 보고 싶은 'DVD'를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우편으로 'DVD'가 다음 사진처럼 잘 포장되어 배달된다.


< 출처: 영문판 위키백과, 위키공용 미디어(연결고리) >

그림설명: '코치카터' DVD가 충격방지용 포장봉투에 넣어져서 도착했다. 이를 다 본 후에는 오른쪽에 있는 반납용 봉투에 넣어서 반납하면 된다.

이를 다 보고 역시 우편으로 반납하면, 다음 'DVD'를 빌릴 수 있다. 넷플릭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 달에 8.99불(세금별도, 현재 환율로 약 11,000원)을 내면, 무한정 'DVD'를 대여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고객이 얼마나 빨리 빌린 'DVD'를 시청하고 다시 우편으로 반납하느냐에 달려있다. 영문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1999년에 이렇게 월간 무제한 대여가 가능한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9년에 발표하기로는 곧 캐나다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경쟁업체(월마트 혹은 아마존)가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지만, 넷플릭스는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해 '대여업계'를 혁신시킨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꼽고 싶은 것은 바로 대학교 교과서 대여업이다. 한국에서도 대학교 교과서의 값은 상당히 높은 가격이지만, 책값이 더 비싼 미국의 경우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싸다. 전공서적 한권에 100불(현재 환율 약 12만원)이 넘는 것은 다반사이다. 이렇게 되면 1년에 전공 수업을 5과목 듣는다면, 책값만 500불~1,000불에 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교 교과서는 1년 정도 보고 나면 다시 보는 일이 상당히 적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나로서도 학부 때 전공서적을 열심히 들춰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물론 전공이나, 개개인에 따른 편차는 있을테지만, 예전 교과서를 많이 보지 않는 학생의 경우에는 교과서 대여점에서 대여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일테니까, 이러한 비지니스가 있을 수 있겠다.

구글을 통해 검색해본 결과 다른 업체도 있지만, 일단 영문판 위키백과에서 검색한 일명 "닭과 달걀" 회사라 불리는 체그닷컴(Chegg = chicken + egg)이 있다. 이 회사는 2003년에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자취방에서 쓸 침대부터 교과서까지)을 다루는 대학생용 종합 쇼핑몰을 생각했었는데, 거래되는 상품에서 대부분이 교과서임을 깨닳고서 2007년에 위에서 언급한 넷플릭스 모델을 참조하여 교과서 정가의 절반 정도에 대여해주기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책의 재고가 없어서, 대여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온라인 서점에 체그 회사 측에서 주문해서 고객(대학생)에게 직접 배송되도록했다고 한다. 이 때에 너무 많은 책 주문이 들어오자, 한때 체그의 설립자인 라쉬드(Rashid)의 신용카드가 도난된 것이 아닌가하고 신용카드회사에서 이를 정지시켰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2009년의 매출액은 약 1천만달러(현재 환율 120억원)라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넷플릭스 사업 모델에 대해서는 3,4년 전에 들었고, 이 체그에 대해서는 1,2년 전에 알게 되었다. 체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단지 '우와, 넷플릭스 모델이 이렇게 응용될 수 있구나'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얼마 전에 한국 신문기사를 보니, 이를 또 응용한 업체가 나타났다. 바로, 미시건 대학교 재학 중인 한국계 미국인 앨런 김이 만든 베버루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디어는 역시 간단하고, 'DVD', 대학교과서 렌탈 모델과 매우 흡사하다. 아기옷은 3개월 적어도 6개월 단위로 더 큰 옷을 입혀야하므로 이 기간만큼 입고, 반납하면 다음 옷을 받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서 밝혔듯이 'DVD', 대학교과서, 아기옷은 한 번 사용하고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끼리 돌려서 사용하거나, 혹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교환하고는 했는데 이를 온라인화하여 시장을 더 크게 만들고, 그 혜택을 고객에게 돌려줌으로서 사업을 키우는 구조를 이룩한 것이 위에 소개한 온라인 대여 업체들인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 편에는 위의 업체 방식이 한국 시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고찰해보고자한다.



by 질럿 | 2010/08/30 03:31 | 생활의 발견 - 전략기획 | 트랙백 | 덧글(4)

케이티 페리의 "캘리포니아 걸즈" 그리고 캘리포니아와 관련된 노래..

최근에 라디오에서 들은 케이티 페리의 "캘리포니아 걸즈(California Girls)"가 귀에 잘 감겨들기에 유튜브에서도 찾아보고 요새 자주 듣고 있다. 흔히 '여름 댄스곡'이라고나 할까.. 어렵지 않은 가락과 리듬인지라 재미있어서 여기에 링크를 달아본다.





그리고 밑에는 캘리포니아를 배경, 소재로한 노래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모음..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





투팍의 "캘리포니아 러브(California Love)"도 빠질 수 없겠지..





이상은 캘리포니아가 거의 제재(주요 소재)라고 할 수 있는 노래들이고, 다음은 그냥 캘리포니아를 소재로 하여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노래들...

남가주(southern California)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알버트 하몬드의 "잇 네버 레인즈 인 써던 캘리포니아(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





이글즈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무언가 몽환적인 내용..



by 질럿 | 2010/08/27 10:48 | 좋아하는 가사(Lyric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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