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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육군 - 호사카 마사야스

"쇼와 육군"은 논픽션 작가인 호사카 마사야스가 돌아본 쇼와 연간의 전쟁(1930-1945)에 대해서 왜 일본 군부/정부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일본군은 잔인한 짓을 하였는가를 탐구한 책이다.

병사의 입장에서 쓴 일본 육군의 문제가 되는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인 것 같으면 기분 탓이겠지?

* "제 7장 팔로군에 가담한 일본 병사의 중일전쟁"에서 발췌

가가와 다카시 - 1940년 8월 팔로군의 포로가 되어 우메다 데루후미라는 가명으로 팔로군 일본군 포로 반전조직에서 활동


화베이華北에서는 가는 곳마다 일본군 포로들에 의해 반전 조직이 만들어졌는데, 그 조직은 8개가 넘었다. 모두가 팔로군의 정치 교육을 받았거나 그것에 공명한 조직이었다.

  1942년 8월, 그 조직의 대표자 53명이 옌안에 모여 전화베이일본병사대표자대회全華北日本兵士代表者大會를 열었다는데, 가가와도 대표 중 한 사람이었다. 화베이에 있는 반전 병사의 의사를 확인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대표자들은 수차례 회의를 열었다. 중심 주제는 ‘일본 병사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였다. “지금까지 일본 병사를 설득할 때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자’와 같은 딱딱한 표현을 사용한 탓에 오히려 일본 병사의 반감을 샀다. 일본 병사의 심정을 고려하여 반전을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떤 수단이 효과적일까?” 그들은 논의를 거듭했다.

  “일본군은 하급 병사를 너무나 학대하는 군대다. 자신들도 하급 병사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심정으로 돌아가 어떤 불만이 있었는지를 적어보자”라는 얘기가 나왔고, 각자가 일본 육군에 있을 때 맛본 여러 가지 고통을 털어놓았다.

  “사병은 급료를 고작 10엔밖에 받지 못하지만, 장교는 소위만 되어도 130엔이나 받는다. 사병의 전시 수당을 인상하길 바란다.”

  “밥을 실컷 먹고 싶다.”

  “전선의 사병에게 말린 식품만이 아니라 생선이나 채소도 먹을 수 있게 하라.”

  “주보酒保(육군 내부의 매점)에서 장교와 사병으로 구별하여 판매하지 마라.”

  “단것을 먹고 싶다.”

  “따귀를 때리지 말라. 제재制裁를 그만하라.”

  “사병에게는 너덜너덜한 옷을 입히고 장교들만 깨끗한 옷을 입는 것을 멈춰라.”

  사병들의 불만은 순식간에 몇 가지씩 쏟아져나왔다. 장교가 부사관이나 병사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데, 이런 군대는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불만은 점차 일본 육군 내부의 체질에까지 미쳤다.

  “상관의 명령이라 하여 무엇이든지 사병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례했다고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

  “장교 자신도 지키지 못할 정신 훈화를 하지 마라.”

  “연습 시간을 단축하라.”

  “사병을 처벌할 때에는 전우의 배석陪席을 인정해야 한다.”

  “헌병은 직권을 남용하여 함부로 사병에게 설교를 하거나 따귀를 때리지 마라.”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는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라.”

  “토벌 작전 후에는 2~3일 동안 휴가를 주었으면 좋겠다.”

  “신문이나 잡지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제 9장 장고봉 사건과 일본인 포로의 인생" 에서 발췌

나루사와 후타오 - 1938년 8월 장고봉 전투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8년간 복역후 1947년 부터 시베리아 국영 농장에서 일하다 1955년 일본으로 귀환


나루사와가 마이즈루에 도착한 것은 1955년 4월 18일 이른 아침이었다. 실로 17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나루사와의 나이 이미 38세였다. 마이즈루에는 어머니와 친척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후생성에서 귀국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3만6000엔이 마루사와의 손에 쥐여졌다. 이렇게 받아도 괜찮을까 생각했다. 금전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루사와가 마을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후생성에서 연락이 왔다. 1941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전사자로 취급해 어머니에게 공무부조금을 지불해왔으니 즉시 전액을 반환하라는 것이었다. 그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어머니는 나루사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나루사와의 아우는 뉴기니전선에서 전사했다. 그 유족 연금이 일방적으로 중단되었다. 그것으로 어머니가 받은 돈을 갚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노후까지 농사일을 하면서 나라에 돈을 갚았다. 꼬박 6년이 걸렸다고 한다.

  나루사와는 일본에서의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는 촌장의 호의로 마을 사무소에 자리를 얻어 38세부터 정년까지 일했다. 시베리아 억류자에게 지급되는 위로금 10만 엔과 정부의 감사장도 전전戰前부터 억류자였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되어 받을 수 없었다.

  장고봉 사건의 불장난에 흥겨워했던 고위 군인들은 전후에도 물가에 연동시켜 중견 샐러리맨의 연봉에 해당되는 연금을 받았다. 이나다 같은 사람은 전후에도 목소리를 높여 재군비를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는 일개 하급 병사에 대하여 그 노고를 전혀 보상하지 않았고, 부조금을 박탈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쇼와 육군의 전후 처리는 전전의 위계에 준하여 차별받고 있는 것이다.

  쇼와 육군이 저지른 짓을 결산해야 할 국가는 외국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아직 충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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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분 탓이겠지?

by 질럿 | 2018/08/11 00:13 | 좋아하는 책(Bookstor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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