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 27일
신의주, 서울, 시카고, 싱가포르
지난 주에 업로드 된 <그것은 알기 싫다>의 에피소드 <한민족♥이상평론>[1][2]를 어제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 중국의 파오차이-김치 문제에 대해 오역 문제를 지적한 <이상평론 lost in translation>[1][2] 시리즈 이후로 손이상 선생의 민족관(?)에 대해서 여러가지 여론이 있었는지, 아예 민족관 특별 에피소드가 나와버렸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이 거창하기는 하지만 나도 나름 디아스포라의 산물(아니 산인)이다. 나의 외가는 해방이후-한국전쟁 사이에 신의주에 사시던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바로 윗형이신 외종조부께서 몇 십명 단위로 월남하셨고, 이 단체 월남 이외에도 월남하신 외가 어르신들은 아주 많다. 뭐 그런고로 나는 (출생지주의를 따르는) 미국 기준에서 남한 사람인 아버지와 (미국기준에서) 북한 사람(이었던) 어머니의 혼혈아(?!)로서 남한국적이되 특수한 취급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를 출생지 기준으로 분류하여 쿼터를 주는데 남한 출생과 북한 출생을 구분한다. 이에 탈북하여 한국에 정착한 북한 출생 남한 사람들은 미국 이민이 용이하다. 그런데 나는 남북한 혼혈로 그냥 제3의 출생으로 집계해서 또 다른 쿼터의 적용을 받는다고 했었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1948년에 출생하셨기 때문에 작금의 북한과 아무 관계가 없다.)
외가 어른들은 서울에 정착해서도 김일성이 언제 또 쳐들어오면 월남한 사람들이라고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고 더 멀리멀리 가셨다. 미국으로. 결국 외할아버지와 바로 윗형님이신 외종조부께서는 시카고에 정착하셨다. 1991년에 외할아버지-외할머니께서 시카고에서 금혼식(결혼50주년)을 하셨을 때에는 미국 중부에 그 많은 이북출신 어르신들(주로 평안도)이 모이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그게 장관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재미교포는 다 이북 출신 아닌가 할 정도로 외가 어른들이 이민을 많이 가있었으니까)
여튼 우리 외가쪽 친척은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직계는 시카고에 있(었)다. 나는 엘레이에서 활동(?)을 했기에 응원하는 야구팀은 엘레이 다저스라고 했을 때에 내 사촌 (Joe Han)은 "제발 우리 일족이면 시카고 컵스 합시다"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나마 엘레이였기 때문에 나는 "제발 한국인이면 다저스 합시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엘레이에도 외가쪽 친척이 아주 많은데 이쪽은 어머니의 사촌이신 분들이다.)
여튼 이렇게 나의 외가쪽 직계 어른들은 신의주에서 월남한 서울을 거쳐 시카고에 정착하셨고, 어머니는 1991년의 금혼식 참석하신 이후에 간단한 수필 <신의주, 서울, 시카고>를 집필하셨다. 압록강변에 있는 논밭 이야기로 시작해서 시카고의 금혼식 잔치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의 수필 제목은 지금 보니 운율이 살아있다. <성탄제>의 구절 '서러운 서른 살'에 버금가는 두운 아닐까한다.
외가쪽 친척이 모두다 미국에 계시지만, 많은 페친이 아시다시피 나는 한국(남한)에서 나고 자랐다. 이는 우리 어머니만 이민을 안 가셨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자라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했고, 외가쪽 어른들은 내가 엄마 대신(?) 시카고(는 아니더라도 미국)에 살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내 업무상 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미국에서 다시 아시아로"" 디아스포라하게 되었고, 어머니의 수필 제목은 다음과 같이 바꿔서 속편을 써야할 것 같다. <신의주, 서울, 시카고, 싱가포르> - 물론 여전히 두운이 맞는다.
디아스포라 몇 세대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을 나의 아이는 본인이 싱가포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유치원을 다녔다. 2018년 내셔널데이(독립기념일)에는 싱가포르 국기를 흔들면서 유치원에서 배운 싱가포르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러다가 옮긴 유치원은 같은반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화교계(화예) 싱가포리안들이기도 하다 보니, 거기서는 '코리안'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코리안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BTS와 블랙핑크도 있고해서 코리안으로 지내는 것이 'Latte'에 비해서 전혀 나쁘지도 않고하지 별무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화예가 많은 유치원에서 이질감이 없도록 출석부에 한자도 병기해달라고 해서 Eun Jooyoung(殷珠永)으로 다른 화예들과 다를바 없이 해줬다. 독음이 문제가 될 것 같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표준중국어(만다린)를 쓰지만 이름은 영문으로 쓸때 화예들의 경우 만다린 독음보다는 복건어나 객가어 혹은 광동어 독음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도 별 위화감이 없다.
쓰는 말로 할 것 같으면 아이가 돌 전후까지야 어디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니다보니 한국어에만 노출되었고, 외출해서 내가 영어하는 것을 들으면 이상한 말을 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했다. 그러다가 한국의 '문센' 같은 부모참여수업을 필두로 놀이방 같은 곳에 다니다보니 기본 언어가 영어로 장착되었다. 그러다가 30개월쯤인 2018년 여름에 한국 간 김에 한국의 영어유치원에 보냈더니 한국말을 아주 많이 배워서 집에서는 한국말로 소통하게 되었다. (영어유치원에서 한국말을 배운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한국의 영어유치원은 경우따라 다르지만 한국어 수업이 절반 혹은 그 이상이고, 영어 수업에서도 영어 원어민 비중이 100%가 아니다.)
이렇게 계속 말은 한국어로 대화했지만 한글은 아직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세 돌 즈음에 공부를 많이 시키는 지금의 유치원으로 옮긴 다음 부터는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우고 영어 알파벳 쓰기와 중국어 한자(간체자)쓰기를 배우다 보니 한글까지 가르치는 것은 공부 부하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한국어로 하는데 아이에게 편지를 쓰거나 문자메세지를 보낼때는 영어로 보내야한다. 뭔가 조선시대에 말은 한국말을 하고 글은 한문을 쓰던 느낌이든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자기는 싱가포르에 사니까 싱가포리안이라고 하던 2년 쯤 전에, 마트에 갔을때 안내방송이 영어와 중국어로 나오니까 "어~ 왜 English랑 Chinese만 나오지. Korean만 아는 사람은 어떻게하라고"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싱가포르 사람들은 적어도 영어 아니면 중국어 중에 하나는 알아듣는다고 이야기해줬다. 아이가 생각하는 싱가포르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싱가포르 사람보다 외연이 넓었던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싱가포르와 코리아의 구분이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지만.
언어는 또 다른 국면으로 진화하고 있다. 작년인가에는 영국에서 나온 박물지 같은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헬리콥터(Chopper)에 대한 책이었는데, 내가 피곤하기도 하여 영어책을 들고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어줬더니 영어책인데 왜 한국어로 말하냐고 영어로 읽으라고 해서 (고생하며) 읽어줬다. 이게 또 영국에서 나온 책이면 표현도 좀 영국식이고 해서 '되도 않는' 영국억양을 조금 넣어서 읽어줘야할 것 같기도해서 피곤한 일이다. 지난 주말에는 한국어 자연사책을 읽어주는데 아무래도 한국어로 된 용어는 못 알아들을 것 같으니까 영어로 바꿔서 읽어줫더니 이번에는 한글로 써있으니까 한국어로 읽으란다. 물론 못 알아듣는 말이 많다. Jupyter는 알아도 목성을 모르니까.
영어 밖에 못 하던 두돌~두돌반 무렵에 귀여운 발음으로 "come here come here"하면서 아빠 이리오라고 하더나 "sit here sit here"라고 하면서 옆에서 같이 놀자고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러다가는 한국의 영어유치원에서 한국어를 배워서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갑자기 해서 놀랐던 기억도 난다. 얼마전에는 아이가 친한 한국인 친구가 자꾸 영어로 말한다고 불평을 한다. 아이 친구가 다니는 유치원은 중국어 비중이 조금 적고 영어 비중이 높아서인지 그리고 영어를 쓰는 육아도우미와 오래 시간을 보내서인지 영어를 더 많이 쓴다. 이런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도우미는 영어 밖에 못하니까 그런거고 왜 자기랑 이야기할때 영어로하냐고 발끈한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외할머니와 통화할때 "pinyin xue해야해서 바뻐서 (한국) 못가"라고 이야기한다거나, 나한테도 영어로 얘기하거나한다. 피진이 된 말들이 재미있다. 디아스포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 by | 2021/03/27 11:38 | 유학기, 이민기, 그리고 육아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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