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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 가트와 알렉산더 야콥슨의 <민족 -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 그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

최근에 읽은 아자 가트와 알렉산더 야콥슨의 <민족 -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 그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에 대한 본격적인 서평을 쓰기 전에 책 추천해주신 아재돌 임명묵 선생께 사의를 표명하고 여기에 재청(?) 추천 드리기 위해, 책의 논지를 요약하고 이와 관련된 제가 다른 곳에서 보고 들은 사례들을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이 책의 주요 논지는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은 18세기 이후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실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근대에 들어서면서 민족이 ‘재’정의 되었을 수는 있지만 중세 혹은 그 이전에도 ‘같은 민족’이라는 동류 의식하에 다른 민족을 배척하며, 민족 단위로 정치단위(자치령이 되었던 국가가 되었던)를 이룬 사례가 충분히 많다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예는 아니지만 조선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에도 지배층(엘리트)에게 수탈당하던 민중(책의 표기를 따르자면 인민)들이 타민족의 침입으로 인식하며 봉기했지 않습니까.

물론 민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서 특정 지역의 다수 민족(혹은 인족people)이 상대적으로 소수인 민족/인족을 동화시키거나, 비슷한 배경의 민족/인족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민족으로 바뀌거나, 소수 민족을 사멸시키는 사례가 많습니다. 잉글랜드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앵글로색슨족은 이전에 브리튼 섬의 ‘잉글랜드’ 지역에 살던 켈트족을 ‘사멸’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앵글로색슨족은 정확히는 현재의 독일 지역에서 이주한 앵글족, 색슨족, 그리고 주트족이 사실상 통합되어 생겨난 새로운 민족태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민족태의 탄생을 보자면, ‘미국 민족’ 혹은 좁게는 ‘미국 백인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잉글랜드에서 이주한 앵글로색슨족만을 미국인 혹은 미국백인으로 인정하다가 18~19세기를 거치며 켈트계인 스코틀랜드인, 독일계 이민, 아일랜드인이 차례로 미국백인에 포섭/동화 되었고, 20세기에는 이탈리아계 이민과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동유럽출신을 중심으로 하는 (백인계)유대인 역시 미국백인으로 통합되어 갔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불한당들의 미국사>를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민족태가 탄생할 때에는 종교 혹은 언어의 통합이 이루어지는데요. 위에서 예로 든 미국백인의 경우에는 ‘영어’로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파리 지역의 언어가 국어의 위치에 오른 프랑스의 경우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프랑스 북부와 남부의 통합은 중세-근대에 걸쳐서 서서히 일어났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통합되며 ‘프랑스 민족’이라는 민족태가 출현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단순히 (남부 프로방스어가 아닌 파리중심의) 프랑스어가 프랑스 민족을 규정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고,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적 가치’가 프랑스 민족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합니다. 저는 프랑스의 ‘공화국 정신’에 대해서 피상적인 이해를 하고 있을 적에는 ‘똘레랑스’라는 가치를 내세우는 프랑스가 왜 때문에 이슬람 인구를 강제 동화시키려하고 학교에서 여학생의 차도르 착용을 금지하며, ‘샤를리옙도 사건’을 촉발하도록 타종교를 과하게 풍자하는가에 대해 큰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족>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공화국 정신을 따르는 사람을 ‘프랑스 민족’으로 정의하면서 종교가 세속(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프랑스어를 모두가 사용하는 것으로 국가 통합을 이루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책에서는 ‘시민적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예로는 현재 군부 쿠데타로 문제가 많은 미얀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얀마는 지리/역사적 특성상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중 버마족이 다수를 구성하고 있지만 절대다수는 아닌 관계로 민족들간의 역학 관계가 미얀마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미얀마 독립의 영웅(혹은 제국주의 부역자)이자 국부인 아웅산 장군(아웅산 수지의 부친)은 최초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에 연방제를 주창하여 소수민족에게 5년 후 분리독립을 요구할 권한을 주었는데, 암살 당한 이후 총리가 된 ‘우 누’는 불교를 중심으로 미얀마의 민족을 통합하려 했다고 합니다. 버마족 이외의 대부분 민족이 상좌부 불교(소승불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미얀마족’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에 제외된 민족은 기독교를 믿는 카렌족과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 족이었습니다. 로힝야 족은 이번 2021년 군부 쿠데타 이전의 미얀마 정부의 소수민족 탄압 대상이 되었던 바로 그 로힝야 족이지요. 이를 보면 미얀마는 (또 다른 시민적 민족이 될 수 있는) 미얀마족을 탄생시키는 데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그것은 알기싫다 160a,b와 161b 에피소드를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시민적 민족의 예로는 자지단체(칸톤)별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총 4개 공용어가 있는 스위스 이야기입니다. 스위스는 언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지만, 중세 합스부르크 왕가에 저항하는 데에서 연원이 된 민족이 아닌가 합니다. 또 중국계, 말레이계, 인디아계(타밀계)로 이루어져 있고 4개의 공용어가 있는 ‘동양의 스위스’ 싱가포르도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사실상 영어로 언어가 통일 되었고 국부 리콴유 총리와 인민행동당(PAP)이 영국 식민지배의 유산(영어 구사능력, 법률 제도와 무역항의 이점 등)에 아시아적 가치를 더해 새로 창조된 싱가포르라는 국가태는 싱가포르 민족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리콴유 총리가 여러 민족들 간의 조화와 번영을 위해 내건 기치가 “Singapore for Singaporean”으로서 싱가포르 사람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한다면 싱가포르인(싱가포르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는 사상이 국가 건립부터 이어져 왔으니까요.

스위스와 싱가포르 외에도 세계 인구 1,2위를 다투는 중국과 인디아(인도) 역시 다언어 국가입니다. 중국은 표준중국어(만다린)를 사용하는 ‘중화민족’이라는 민족태를 만들어서 국가 통합과 번영을 유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인디아의 경우에는 1개의 공용어를 지정하지 않고 아주 많은 수의 공용어를 인정하며 (다수 언어인) 힌디어 보다는 영어가 사실상의 제1언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과는 다르게 인디아의 경우 개별 민족/인족의 구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별 민족단위로 해체된 유고슬라비아나 바스크족,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운동이 있는 스페인과는 다르게 인디아의 경우에는 아주 많은 수의 민족/인족이 존재하여 오히려 균형을 이루며 국가 통합이 유지되어 인디아라는 일종의 ‘초민족태’를 만들어가고 있지 않냐고 합니다.

이상 간단하게(?) 적어 본 <민족>의 서평이었습니다. 제가 빼먹거나 개념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의견 개진 부탁드리겠습니다.

by 질럿 | 2021/09/17 15:09 | 좋아하는 책(Bookstor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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