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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몇 년도일까? - <전통, 조약, 장사>를 읽다가 든 잡상

한국에가서 힘들게(?) 구해온 종이책 <전통, 조약, 장사>의 1장을 읽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청제국과 조선/대한제국과의 관계를 개항한 1876년부터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까지 종주국-번국의 관계, 제국주의 국가와 피탈국가의 틀을 가지고 설명하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작년에 읽은 책 < 조선, 1894년 여름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이 생각났다.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이 보기에는 1894년 이후로 (청일전쟁 이후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물론 현대 한국인인 내가 배우기로는 1910년 경술국치를 기점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했지만,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번에 <전통, 조약, 장사>의 시작부분을 읽으면서 다시금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조선(대한제국 포함)이 망한 것은 언제인가?

1) 1910년 - 경술국치 혹은 한일 합방
2) 1905년 - 을사늑약 혹은 외교권 박탈
3) 1904년 - 러일전쟁으로 일본제국 세력권에 실질적으로 편입
4) 1895년 - 을미사변으로 일본제국의 세력이 조선 조정에 제대로 침투
5) 1894년 - 청일전쟁으로 청제국의 종주권이 소멸
6) 그외 - 1884년 갑신정변, 1882년 임오군란, 1876년 강화도조약

교과서적 답변은 1)번이고, 굳이 다른 답을 고르더라도 2)번일 것이다. 하지만 1890년대 말에 이미 유럽인 헤세-바르텍은 조선을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간주하고 있지 않았던가. 동시에 아무리 소급해서 생각하려해도 강화도조약 때 이미 조선이 망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내가 생각하는 조선(대한제국)의 망국시점은 1894년~1910년 16~17년에 걸친 과정이었다고 본다. 개국이나 망국이라는 것이 무슨 월드컵 축구 결승전도 아니고 어느날 하루를 특정지어서 망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렇다면 조선의 개국은 언제인가하는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었다.

1) 1394년 - 조선의 한양천도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사망(+왕씨 일족의 부흥운동 실패)
2) 1393년 - 명제국이 "조선"이라는 국호를 공인
3) 1392년 - 이성계가 공양왕으로부터 '양위' 받음
4) 1388년 - 이성계가 군사정변(위화도 회군)으로 집권
5) 918년 -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름이 바뀌고 왕성이 바뀌었을 뿐 조선이 고려를 계승

여기서 교과서적인 답은 당연히 3)번이다. 4)번은 조선 왕조의 개창자인 이성계가 사실상 최고 권력자가 된 시점을 나타낼 뿐이니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고려의 무신정권에서 최충헌이 정권을 잡고서 총 4대를 계승했지만, 결국 '최씨 왕조'를 개창하지 않았는데 마찬가지로 이성계가 무신정권만 이루었을 수 있으므로 군사정변 시점을 조선의 개국으로 잡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1)번과 2)번은 조선 왕조 성립 후, 후속 조치에 해당하는 것 같다. 1)번이 조선의 개국시기가 되어야한다면 마찬가지로 조선(대한제국)이 망한 시점도 마지막 군주인 순종이 사망한 1926년으로 보아야 할 수도 있다.

마지막 5)번은 정말 새로운 접근인데, <폭력의 차원에서 본 한중관계>라는 딴지일보 연재기사에서 처음 접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중국측에서 바라보고 있었고, 사실 조선도 고려를 계승했다는 점이다. 조선의 개국시점을 고려의 개국시점으로 소급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앞서 말했던 망국이 한날 한시에 이루어진 '점'으로 표시되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과 같은 흐름에서 이야기하자면 조선의 개국시점 역시 여러 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고려의 역사 전체가 조선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는 없으므로 조선의 918년 개국설은 받아드리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조선의 개국은 1388년에서 1394년 사이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고, 멸망은 1894년에서 1927년 사이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by 질럿 | 2022/01/19 02:16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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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온주귤 at 2022/10/08 00:39
개인적으로는 1882년 임오군란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국의 쿠데타를 막지 못해 외세의 힘을 빌릴정도로 허약해졌고, 내정간섭 명분을 스스로 주어버렸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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