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20일
청제국은 제국주의의 희생냥이기만 할까?
얼마전에 지인으로부터 < 전통, 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 1850-1910) >를 소개 받아서 얼마전에 완독했다. 내친김에 한국에서 같이 사온 < 자금성의 황혼 (마지막 황제 부의의 스승 존스턴이 기록한 제국의 최후) >도 이어서 읽었다. 이 두 권의 책을 보고서 하고픈 말은 바로 제국주의100년(19세기 중반 ~ 20세기 중반)동안 청나라와 조선은 완전히 다른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려다보니 너무 추상적으로 말하게 되었는데,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흔히들 "제국주의 시기에 일본(제국)을 제외하고 '모든 아시아'가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라는 서사를 읊고는 하는데, 아시아라고 다 같은 아시아가 아니듯, '서세동점'의 시기라 퉁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선 청나라의 정식 명칭은 '대청제국'이었다. 이름만 제국이었던 대한제국(조선)과는 다르게 대청제국은 제국주의 국가였고, 만주, 몽골, 중원(한족의 영역), 서역(위구르), 준가르, 티베트, 타이완을 아우르는 '제국'이었다. 청나라의 제국성/다원성에 대해서는 <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을 보면 잘 나온다. 물론, 위에 언급한 영역의 대부분이 지금의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제국으로서의 청나라라는 이미지가 머리에 쉽게 떠오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대신 청나라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처럼 '민족국가'로 보이기 마련이다.)
< 전통, 조약, 장사 >의 논지를 발전시키자면, 유럽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청나라라고 해서 대청제국으로서의 본분(?)을 져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제국주의를 추구했고, 조선에 대해서는 '제국의 이익선'을 지키고 제국주의적 침탈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1894년 청일전쟁 이후에는 청나라의 영향력이 감소했고, < 조선, 1894년 여름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에서도 이미 1890년대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기술이 있을지 경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실상 de facto)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도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탈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물론, 조선의 개항 이전에도 대청제국은 조선의 종주국이었지만, <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에도 나오듯이 조선 왕은 청나라에서 의전 서열이 높은 편이었고, 형식상의 종주국이지만 사실상의 독립국이라는 인식이 청나라 내부와 기타 유럽 제국주의 열강사이에서도 컨센서스로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말해, 청나라의 제국주의적 침탈은 19세기 중반 이후 위에서 말한 제국주의 한 세기 시작 즈음에 있었던 일인다.
이렇듯, 청나라(1912년)와 조선(1910년)은 비슷한 시기에 망했지만, 망하기 이전까지 제국주의적 팽창을 시도했던 나라와 독립국에서 자주성을 점점 잃었던 나라의 차이는 충분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뿐만아니라 < 자금성의 황혼 >을 함께 보자면 다른 점은 충분히 많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듯이 대청제국은 민중 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멸망했지만, 대한제국(조선)은 혁명으로 망하지 않고, 일본제국에 주권을 이양했다. 혁명이라 불릴만한 것은 홍경래의 난, 동학 농민 혁명과 갑신정변 정도가 있지 않을까한다. 물론 다 실패로 돌아갔을 뿐이고. 아무리 중국이 중화민국 성립 이전부터 많은 영토를 할양하고(연해주, 타이완 섬, 그리고 본토의 수많은 조차지) 제국주의 한 세기의 말기(1930년대)에는 중국 강역의 상당 부분을 일본제국에게 침탈 당했다고 하더라도 중화민국은 주권 전체를 일본제국에 이양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계속 항전했고, 독립 전쟁(독립 운동)을 하는 한국(조선)의 투사들을 도와주었을 정도다.
나만 청-조선에 대해 제국주의 한 세기 동안 침탈 당하다 망한 나라라고 동치시켜 생각했는지도 모르지만, 여튼 < 전통, 조약, 장사>와 < 자금성의 황혼 >을 보면서 청나라와 중화민국 성립 초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포스팅의 주요 논지와 관계는 없지만 추가적인 이야기 몇 개
* < 전통, 조약, 장사 >와 < 자금성의 황혼 >에 원세개(위안스카이)가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젊었을 적의 원세개가 나중에 청나라와 중국의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물로 성장하는 과정이 보인다.
* 존스턴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책이 쓰여진 시점에 1930년 전후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이었고 일본제국의 중국 침탈이 가속화되기도 전이었다. 부의가 만주로 '돌아가서' 한족의 중국과 분리된 만주족의 국가를 세우고 북 만주-몽골 연합국, 남-중화민국이 정립 할 가능성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후의 역사를 알고 있는 현대인이 보기에는 일본제국의 괴뢰국으로서의 만주국 이미지가 강하겠지만, 당시로서는 충분히 타당한 주장이었을 수도 있다. 중국 역사상 많은 북방 민족들(몽골, 거란, 여진)이 '남쪽'의 한족 영역을 점령하고 통치하다가 나라가 망한 이후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던 예가 많이 있지 않은가. 존스턴 입장에서는 본인과 심정적으로 가까운 만주족 국가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쉬웠을 것이다. 나아가 1898년 무술변법과 1911년 신해혁명 사이에 만주족 측에서 잘 대응했다면 북경 이남을 한족에게 양도하고 만주지역으로 돌아가서 청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여러 번 표명한다.
*위에서 존스턴은 과거의 사람으로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부의가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국에 관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했다. 미래의 사람들(우리)은 존스턴의 그러한 태도를 무지의 소산으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과거의 사람들이 한 기록을 후대의 미래인들이 공부하면서 동시대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당시의 분위기를 좀 더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미래를 예측했었고, 예측된 미래와 실제 미래는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하며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론을 정립할 수도 있다.
# by | 2022/02/20 17:44 | 좋아하는 책(Bookstor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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