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3월 18일
한국 정치 지형의 세대론 -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그 다음은?
관전만으로 다음 날 급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대통령 선거였다. 그래서 원기를 회복 할 겸 정치지형의 세대론에 대해서 써봤다. 이 글을 처음 쓴 것은 2022년 3월 10일 대통령 선거 개표가 끝나고 며칠 사이에 2번에 나누어서 페이스북에 포스팅으로 올려서 댓글 등으로 피드백을 받았고 이를 종합해서 하나의 블로그 글로 쓰는 것이다.
이전의 <90년생이 온다> 서평에서도 밝혔듯이 특정 세대는 이렇다는 식의 도식화를 최대한 지양하려고 하지만, 1987년 개헌 이후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지역 투표 대신 세대간의 지지 정치세력 분화가 점점 더 심화되는고로, 이쯤에서 정치 지형의 세대론을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의 세대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IMF키즈 세대(97년 외환위기 당시 청소년)로 막상 대학교 재학 6년여 동안에는 그 이전과 이후를 포함하여 대학생의 데모가 정말 적었던 내가 생각하는 '태평성대'를 지냈다. 물론,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학생정치조직("운동권")에서 내 말을 보면, 사회의식이 부족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다고 비판하겠지만 93년 이전의 대학생이나 2016년의 대학생 보다는 IMF키즈 세대들이 태평성대를 보낸 것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말 많은 MZ세대 구분론으로는 적어도 미국식 밀레니얼 세대 정의에 부합하는 첫 해에 태어났고, 40대-50대가 민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고 할 때의 그 40대에 막 들어선 출생연에 해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세대 이름을 이래저래 지칭하는 이유는 세대 구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이야기하려는 것 뿐이고, 나의 본론은 일명 산업화 세대라고 들하는 현재의 60대 이상이 민주당계가 정권을 잡으면 한국이 공산화 된다고 과장하면서 민정당계(현재의 국민의힘 당 과거 새누리당, 한나라당 등) 정치세력에게 '몰표'를 주는가하는 의문을 첫 투표권을 가졌던 대학생때부터 가져왔기 때문이다. 물론 간단한 답은 있다. 실제 6.25전쟁과 북한의 '대남적화 공작'에 실제로 많이 피해를 본 세대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반발이 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현재의 40-50대(민주화 세대)들이 민정당계를 싫어하는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시작된 군사반란을 정권을 잡은 권위주의 정부(독재정권)의 후신이기 때문이다.
문득 산업화 세대의 '반공' 그리고 민주화 세대의 '반독재'를 곱씹다 보니까 그냥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는 것 뿐이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냥 산업화 세대에는 반공이 시대정신이었고 민주화 세대는 반독재가 시대정신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반공과 반독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치열하게 논쟁이 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잘 한 점(공)도 있고 잘 못한 점(과)도 있다는 식의 평가는 내가 태어난 80년대부터 줄기차게 들어왔다. 논점은 무엇 때문에 산업화 세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을, 민주화 세대는 과를 더 중요하게 놓고 평가하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줄곧 나의 의문이었다.
( 60대 이상 민정당계를 주로 지지하는 세대를 '산업화 세대', 40대-50대 민주당계를 주로 지지하는 세대를 '민주화 세대'라고 통칭하는 이유는 10대, 40대, 70대와 같은 연령에 기반한 세대 구분은 10년후에는 명칭이 달라지기 때문이고 '태극기부대'나 '586'은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있는 경우도 있어서 조금더 건조해 보이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라고 칭하고 싶다.)
너무 간단한 답일지 모르지만, 산업화 세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초기 치세를 겪었고 민주화 세대는 말기 혹은 그 이후의 제2군부 독재(post-박정희)를 겼었기 때문이 아닐까.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보면 2000년 전후해서 러시아의 혼란을 잘 수습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초기에 보여주었던 (비민주적일지 모르지만) 유능했던 모습을 모조리 다 잃어버리고 여러가지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 비슷하게 박정희 대통령도 60년대 초반 (쿠데타로) 집권했을 때의 능력있는 모습은 1979년 사망할때까는 사라지고 없었다. 젊은 세대가 볼 때에는 20여년 독재를 하다가 유흥업소가서 술판 벌이다가 총맞아 죽은 독재자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산업화 세대도 '술판 벌이다가 총 맞은' 장면을 기억하고 있겠지만 초기의 유능한 이미지를 지워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평가는 같은 사실을 두고 많이 갈릴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의 명맥을 잇고 있다 할 수 있는 민정당계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도 갈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푸틴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교해보고 나니까, 민주화 세력으로 대변되는 소위 80년대 학번 운동권 출신 정치인('x86정치인')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80년대에 정말로 목숨 걸고 당시의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정의의 투사들을 기억하는 민주화 세대는 당연히 x86 정치 세력을 강력히 지지(몰표)할 수 있다. 그렇지만 x86 정치 세력들이 기득권화 되고 유흥업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성범죄를 저지른 것을 본 민주화 세대 이후의 세대('MZ세대') 관점에서는 x86 정치 세력을 정의의 투사들로 바라 볼 리가 만무하다.
민주화 세대들이 보기에 최근 몇 년사이에 20대~30대들(MZ세대)이 왜 '보수화'(=민정당계 지지=독재정권의 후신을 지지=반-민주주의)되었는가하면서 한탄을 하는데, 이건 MZ세대가 보수화 된 것이 아니라 x86세대가 보수화되고 'x86이 젊었을적의 능력(정의의 투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의 화려한 업적은 나중의 실책에 의해 퇴색되고 젊은이들은 나중의 실책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젊었을 적 휘날리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정치 커리어의 끝까지 어마어마하게 잘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잘하는 인물과 세력에게 지지를 보냈다가, 못 하면 바꿔버리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처음의 논지를 확장해서 산업화 세대도, 민주화 세대도, 그리고 MZ 세대도 모두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고 하고 있을 뿐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민주화 세대 다음 세대 (나도 포함이라서 민망하지만 대충) MZ세대에서는 어떤 가치를 체화시킬까. 아재들이 말하기로는 MZ세대의 가치는 공정이라고들 말한느데 내 생각에는 공정은 체화 다시 말해서 뼈에 사무치는 감정(원한)이 아닌 것 같다.
반공은 공산당들이 내 가족을, 내 친구를 죽였는데 공산당부터 막고 봐야지!라는 가치를 체화시킨 것이다.
반독재는 독재정권이 내 가족을, 내 친구를 죽였는데 독재자들부터 막고 봐야지!라는 가치를 체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내 다음 세대(혹은 내 세대)는 페미니즘이 각인되어 정치 지형이 굳어질 것 같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운이 맞지 않으니까 "반성폭력(反性暴力)"이라고 하면 되겠다.
성폭력에 내 친구가 내 가족이 희생되었는데 그것부터 막고 봐야지!라는 가치를 체화시킨 정치 지형이 이미 자리 잡은것 아닐까한다.
페미니즘 가치가 정치에 들어오는 것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는 분들은 "옛날에는 성폭력 없었냐? 지금보다 심했다. 근데 더 살기 좋아진 지금와서 왜?"라는 말을 하시겠지만, 반공-반독재 서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독재는 이전에도 있었고 90년대 초반까지 있었지만, 반독재가 중요한 아젠다가 된 이유는 공산당에 죽는 지인보다 독재정권에게 죽는 지인이 많아지면서 혹은 더 많이 알려지면서가 아닐까한다. 독재정권 시대에도 성폭력은 있었고 성폭력으로 죽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때는 독재정권이 '거악'이었고 독재정권이 없어진 상황에서는 성폭력으로 죽는 이들이 더 두드러지고, 이들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에, 마치 반공투사나 반독재투사들이 분연히 일어났듯이 반성폭력 투사들이 일어난 것이고 이에 호응하여 반성폭력 가치를 체화한 정치지형이 생긴 것 같다.
뱀다리로, 왜 40대(70년대생~80년대 초반생)들은 민주화 세대도 아니면서 정치적 지형을 그들과 같이하는가에 대한 해설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화된 것이다부터해서 김대중 대통령 때 대중문화 진흥을 보고 감화되어서라는 말까지. 내 답은 어제의 논지에서 그대로 이어서 말하고 싶다. 40대는 민주화 세대가 멋잇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 뿐이다. 50년대생 지금의 60대는 실제로 반공의 최전선에서 싸운 경우는 드물다. 6.25전쟁은 물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이도 50년대생에는 드물다. 하지만, 20년대~40년대 산업화 세대들이 반공의 가치를 갖고 멋있게 싸우던 시절을 기억하다보니 범-산업화 세대로 포섭된 것이다.
# by | 2022/03/18 22:08 | 세상보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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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해체되었으니...
우크라이나처럼 총알받이가 되기 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