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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철의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불굴의 도전 한강의 기적)>

북한이 1970년 수립한 6개년 계획의 목표와 현실... 

오원철의 저서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불굴의 도전 한강의 기적)>를 보고 있는데, 1970년대 남북한의 경제발전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이야기가 나온다. 북한 역시 생활수준을 개선하겠다고 1970년에 높은 목표를 세웠으나 현재까지도 도달하지 못 하였다(...) 아래는 북한이 1970년에 세운 1976년 도달 목표이다.

이렇게 목표는 원대했으나, 실제로 2000년대까지 기간을 늘려 보당도 북한은 1970년에 세운 목표를 30년 넘게 달성하지 못했다. 밑의 자료는 한국 통계청에서 가져온 것이다.

1960년대~1976년까지는 남북한이 체제 경쟁을 강하게 했었으나 2000년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큰 격차가 난다. 남한은 스스로 세운 목표를 꾸준히 달성해 왔고 북한은 50년째 달성 못 하고 있으니까...

추가적으로 오원철 회고록에서 볼 수 있는 첩보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북한의 선전영화에 나온 북한 텔레비전, 중화학 공업 영상을 보고서, 박정희 대통령은 ㅊ장관에게 어떤지 물으니 대단하다고 답을 했지만, 오원철 수석은 


북한 경제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자 단점은 인력, 기술, 설비, 자본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자력갱생 정책, 즉 주체사상이다. 철강의 경우 원료인 철광석에서 철재, 철강재 그리고 최종 제품인 기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북한산이다. 북한은 중화학공업으로부터 출발을 한 것이다. 기초원료부터 시작하였다 해서 북한 경제전략을 '입목형 전략'이라고 했다. 원료나 중간제품에 결점이 있다 해도 그것밖에 쓸 것이 없으니, 여기서 나오는 제품은 품질면에서나 가격면에서 국제경쟁력이 없다. 그러니 수출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분석했다. 선전영화도 생각 없이 만들면 너무 많은 정보를 상대방에게 노출하는 것 아닌가 한다.

1978년경 결재를 받으러 가니, 박 대통령이 한 정보 보고서를 보이며 "모 연구소 간부가 카바레에 자주 나타난다는데 잘 하고 있는 거야?"라는 꾸중 비슷한 말을 했다. 그래서 "각하, 저는 밤늦게 야근을 할 때면, 돌아가는 길에 이따금 그 연구소에 들렀다 갑니다. 그때마다 연구소 건물에는 전등불이 환히 켜져 있는 방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답하니 "그래, 나도 부산에 가면 부산 기계공고를 꼭 바라보게 되는데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더구만. 흐뭇했어. 연구하는 사람들도 머리를 식힐 겸 좀 놀 수도 있겠지"라고 말해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당시의 민간인 사찰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북한의 군수산업만큼은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싱가포르를 통해 수입한 북한제 특수강을 평가해보니, 소련제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공작기계는 남한에서 만들 수 있는 것보다 성능이 떨어졌다. 종합적으로 검토해 봤을 때 북한의 자력갱생은 기술/자본 부족, 수출의 어려움 등으로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판단됐다. 따라서 2000년이 되면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현저하게 커져 전쟁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때도 싱가포르가 남북한 첩보전의 무대가 되었었다.

by 질럿 | 2022/06/26 20:3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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