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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지는 종이낭비인가?

2021년 11월 수능시험 즈음해서 시험장에서 실제 보지도 않고 버리는 수능시험지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었다. 

매년 수학능력시험을 치룰 때, 선택과목과 관계 없이 '모든' 과목 시험지를 배부하다 보니, 100톤의 시험지가 사용도 되지 않고 버려진다고 한다. 이에 대한 비판을 '종이신문' 매체가 기사화하였다. 댓글을 보면, 감독관이 미리 수험생별로 선택과목에 맞추어 재분류하면 버려지는 시험지를 줄일 수 있다는 류의 의견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어떤 종이신문 매체는 탐사보도 결과 지국에 배송된 신문 중 40%가량을 뜯지도 않고 폐지로 판다고 한다. 해당 신문사의 ABC 발행부수는 2021년 기준으로도 100만부가 넘는다. 그렇다면 매일 40만부가 버려지는 셈이다.


그리고 해당 신문은 5부가 1kg정도 된다고 하니 8만kg 혹은 80톤의 새 종이신문이 발행부수 '뻥튀기'를 위해서 낭비된다. 국가는 1년에 한 번 있는 수학능력시험을 위해서 매년 100톤의 여분 종이(시험지)를 낭비한다고 하지만, 이를 비판한 신문사는 '매일' 80톤의 종이를 낭비한다. 주말판을 제외하고 주5일로만 계산해도 매주 400톤, 1년에 2만톤 가량의 새종이신문을 낭비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수학능력시험은 전 국민의 출근시간도 조정되고, 듣기평가 시간대에는 국제공항의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될 정도이다. 해외의 펀드에서 일할 때에, 수능날에는 개장시간이 1시간 늦춰진다고 하면 한국계가 아닌 트레이더들이 놀라곤 할 정도로, 한국에서 수능은 유별나게 중요한 행사이다. 이러한 수능에서 혹시라도 한 명의 수험생이라도 선택과목 시험지를 잘 못 수령하여 불이익이 없도록, 100톤의 종이를 낭비하게 되더라도 아예 처음부터 모든 과목 시험지를 배부하는 것이 그렇게 큰 잘 못인가. 특히나, 어떤 종이신문사에서는 매년도 아니라 매일 80톤의 종이를 낭비하고 있는데 말이다.

다시 수학능력시험의 시험지 재분류로 돌아가보자. 아다시피 수학능력시험 문제는 극비사항으로서 (수능의 이전 버전인) 학력고사에서 문제 유출 사건이 있었을 정도로 민감한 문제이다. 원 기사의 댓글을 보면 감독관이 조금만 신경써서 손으로 미리 분류해두면 될 것을 쓸데없이 종이를 낭비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작업은 수능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에 전날 미리 고사장에서 해야할 것이다. 또한 분류작업을 진행한 인원은 보안을 위해서 따로 격리수용해야할텐데, 이 비용은 어떻게 될까?

혹자는 문제지마다 상단에 바코드 등으로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식별자를 달고, 중앙에서 수험생별로 포장하여 고사장까지 배송하자고 할 수 있을텐데, 관련 장비를 개발하고 각종 시행착오를 거쳐서 자리잡기까지는 적잖은 예산이 들것 같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측면을 제외하고 100톤의 불필요한 시험지를 보관하였다가 파기하는데서 오는 손해는 다음과 같다. 
시험지 인쇄에 있어서 다른 시험지 인쇄를 위해 기기를 작동하고 인력이 필요하므로, 불필요한 시험지를 인쇄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부분 원재료(종이)값이라고 할 수 있다. 신문지 기준으로 1톤당 70만원의 종이값이 들어가니까, 100톤의 불필요한 시험지는 7천만원에 해당할 뿐이다.

하지만, 종이신문 A급 폐지 가격은 kg당 100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100톤의 시험지도 종이신문에 준해서 계산하면 1천만원이다. 따라서 처음의 재료값 중에 1천만원 정도는 회수 할 수 있다. 물론 1년 후에 회수하는 것이므로 이에 따른 이자비용(수능이 끝나고 바로 폐지로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년을 기다려야하므로)을 계산하면 3년~10년만기 국고채 수익률 2%가량을 곱해서 20만원이 들어간다. 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이자비용이므로 제외하겠다.

이제는 탄소배출을 줄여야하므로 100톤의 종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탄소발자국을 계산하여 탄소배출권 가격으로 환산해보자. 종이 1톤당 생산에서 폐기까지 6.3톤이라는 출처도 있고, A4용지 한장당 2.88그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A4용지 한장이 5그램이라고 했을때 비율로 계산해보면 1톤의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0.576톤의 탄소를 배출한다. 그러므로 사용하지 않는 수능 시험지는 약 60톤에서 600톤 사이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봐도 될 것이고, 최근의 탄소배출권 가격 톤당 2만8천원을 곱하면 약 200만원에서 2천만원 사이가 된다. 이 중 가장 큰 값을 취해도 2천만원이다.

이제 위의 값을 모두 더하면 100톤의 불필요한 시험지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 7천만원, 1년후 폐지로 환수되는 비용 1천만원에 탄소배출권을 더하면 8천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를 2022학년도 수능시험 응시자인 50만9천명과 비교해보면 답은 간단해진다.
1인당 200원의 추가비용을 들이면, 선택과목 시험지가 오배송 되는 확률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도록 시험지 배부를 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fool-proof" 방식으로 절차를 설계한 것으로, 수능과 같은 중차대한 행사에서는 매우 장려할만한 일이다.
만약, 이를 감독관들에게 직접 선택과목별로 취합해서 수험생에게 나누어 주라고하면 오류 확률은 비교가 안되게 높을 것이고, 사전 취합을 위한 인건비는 시급 1만원으로 계산하면, 8천명의 감독관(정확히는 8천인시person-hour)이 50만9천명분의 선택과목 시험지를 분류하여야하므로 채산이 안 맞는다. 물론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 돈을 더 쓰자는 주장을 할 수는 있겠지만.

by 질럿 | 2021/11/17 01:00 |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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